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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항일 투쟁의 흔적을 찾아서!...완도 소안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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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항일 투쟁의 흔적을 찾아서!...완도 소안도 여행
  • 정리 김지혜 기자
  • 승인 2019.03.0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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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1일은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따라서 올해 삼일절은 여느 때와 달리 각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3월 여행은 우리의 항일 투쟁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때마침 한국관광공사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와 활약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을 찾아 ‘3.1운동 100주년’ 이란 테마로 설정, 3월에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의 당사도등대 습격사건 모형 ⓒ문일식 여행작가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완도 소안도

소안도는 예부터 달목도라 했다. 초승달처럼 허리가 잘록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안도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본래 남쪽과 북쪽 2개 섬이었다.

파도가 실어 온 퇴적물 덕분에 사주로 연결됐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이 사주에 있어 동서로 바다가 훤히 보인다. 기념관이 위치한 곳은 일제강점기에 소안도 주민의 모금으로 세운 사립소안학교가 있던 자리라 의미도 깊다.

기념관과 함께 소안항일운동기념탑, 복원된 사립소안학교가 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일제강점기에 소안도 주민의 끈질긴 저항 정신을 그대로 녹여낸 곳이다.

▲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의 전경 ⓒ문일식 여행작가

기념관은 영상실과 전시실로 나뉜다. 영상실에서는 소안도의 항일운동 역사를 자세히 소개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국 항일운동 지도가 보인다. 소안도는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린다. 세 지역은 지속적이고 다양한 항일운동을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안도에서는 평화적 시위와 무력 항쟁, 교육 운동과 노농 운동, 비밀결사와 법정투쟁, 섬 주민의 자발적인 학교 설립 등 일제강점기 내내 다양한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을 비롯해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완도 본섬에서 한참 떨어진데다 인구가 6000여 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 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로도 항일운동의 성지가 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전시관은 진(盡, 온 힘을 다하다) 인(人, 사람이 희망이다), 사(事, 행동하는 양심, 역사가 되다), 대(待, 힘을 모아 막아내다), 천(天, 하늘이 내린 천직을 받들다), 명(命, 힘을 보태 강해지다)을 테마로 항일운동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시관 중심에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의 디오라마가 있고, 천장은 다양한 태극기로 수놓았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 1920~1930년대 신문 지면을 장식한 소안도 기사, 독립운동가의 형사판결 원본 등 당시의 유물과 기록도 전시된다.

▲ 소안항일운동기념관과 소안항일운동기념탑 ⓒ문일식 여행작가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은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작점이다. 1909년 일본은 본국을 향해 먼 바다로 나가는 상선을 돕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세웠다. 소안도 출신 동학군 이준화를 비롯한 5명은 일본 선박의 남해 항로를 방해하기 위해 거친 해안 절벽을 기어올라 일본인 등대원 4명을 죽이고, 등대를 파괴했다.

당사도등대가 생긴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당시 불빛을 밝히던 등명기를 파괴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 바다에 빠뜨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등대 주변에는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항일전적비와 광복 후 파괴된 등대원추모비 일부가 역사의 증인처럼 오롯이 섰다.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도 같은 해 시작된다. 소안도는 왕실에 세금을 내는 궁납전이었는데, 1905년 친일 매국노 이기용이 토지를 사유화하자 소송을 벌였다. 일본과 조선 왕실을 상대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13년 법정투쟁
끝에 승리를 거뒀다.

소송 승리의 기쁨은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소안도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여 1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했다. 당시 소 한 마리 값이 70원인 점을 생각하면 꽤 큰 액수다.

▲ 복원된 사립소안학교 ⓒ문일식 여행작가

사립소안학교에서 ‘사립’을 강조하는 이유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세웠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사립소안학교에는 일장기가 없었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항일 정신을 가르쳤다. 노화도를 비롯한 주변 섬뿐 아니라 해남과 제주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소안도 항일운동의 중심에는 송내호 선생이 있다. 사립소안학교의 전신인 사립중화학원을 설립해 교육에 힘썼고, 이후 사립소안학교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1919년 경성(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불과 2주 뒤, 완도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비밀결사 수의위친계를 조직했으며 배달청년회, 소안노농대성회, 살자회 등에 참여해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배달청년회 사건으로 수감돼 이듬해인 1928년 세상을 떠났다.

▲ 복원된 사립소안학교의 종을 치고 있는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장 ⓒ문일식 여행작가

사립소안학교는 지난 2003년 복원돼 평생학습원과 작은도서관으로 운영 중이다. 작은도서관은 시간 내서 들러볼 만하다. 아늑한 공간에 동화책, 소설책 등이 빼곡하다. 소안도를 배경으로 한 동화책 《노래를 품은 섬 소안도》를 읽어보기 바란다.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

* 주변 볼거리: 청해포구촬영장, 완도수목원, 완도타워와 완도모노레일, 장도청해진장보고유적, 청산도

▲ 서쪽을 바라보고 선 송내호 선생의 묘

 <글·사진 문일식 여행 작가 /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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