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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밀교의 성지, 거대한 종교도시 고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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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밀교의 성지, 거대한 종교도시 고야산
  • 여행작가 김영남기자
  • 승인 2010.11.10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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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심장 간사이 탐방 첫번째

일본 열도 정 중앙의 간사이 지방은 일본이 시작된 곳으로 일본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일본의 첫 수도 나라와 천년 고도 교토의 유사깊은 건축물들과 함께 풍성한 자연환경은 관광객들을 유혹하기에 손색이 없다. 과일과 온천의 천국 와카야마, 신성한 신궁이 있는 미에현, 그리고 풍성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도쿠시마현까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간사이 지방을 석달에 걸쳐 집중 탐색해보자.

<사진-수많은 절들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고야산>

진언밀교의 성지. 거대한 종교도시 고야산

-신비로움이 감도는 고야산으로 떠나는 여행

중세이후 일본의 중심이 도쿄라면 중세이전 일본의 핵심은 간사이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경주쯤 될까?

일본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다진 나라가 정치·행정의 중심지였다면 지금 소개하는 고야산과 와카야마현 일대는 오랜 기간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불교문화의 중심이다.

고야산이 이루어놓은 빛나는 문화유산들은 오늘날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기억되고 있다.

고야산은 일본 불교 진언종의 총본산이자 일본 최대의 불교성지 중 하나다.

진언종이라는 종파는 한국에서는 낯설 수밖에 없는데,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밀교의 일종으로 진언, 즉 만트라라고 하는 주문 암송을 수행의 근간으로 하는 종파다. 밀교는 선택된 스님들에게만 전승하는 고난이도의 불교 가르침이다.

<사진-강렬한 색과 거대한 규모로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고야산의 핵심 곤포다이토>

교보대사 구카이

지금과 같은 일본불교의 성지가 된 것은 교보대사 구카이(弘法大師空海)가 816년 이 일대의 땅을 일왕에게 시주받아 곤고부지(金剛峰寺)를 건립하면서 시작됐다.

교보대사 구카이는 일본 제일의 천재승려중 하나로 손

꼽히는 인물로, 804년 제 16차 견당사에 뽑혀 당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20년을 예정한 공부를 불과 2년 만에 끝냈다고 한다.

중국문명이 동아시아 문명의 전부이던 당시 이름도 없던 스님 하나가 2년 만에 중국 밀교를 전수받았다는 건 당시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귀국즉시 일왕을 만나, 고야산의 절터를 얻었다는 것은 바로 이에 대한 반증인 셈이다.

<사진 - 고야산 진언불교의 본산, 곤고부지>


고야산의 핵심 단조가랑

그로부터 1,200년. 고야산은 교보대사의 자취를 온전히 남겨둔 채 오늘날까지 부동의 불교성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고야산에 있는 사원은 무려 117곳. 이쯤 되다보니 고야산의 모든 사원을 관람하겠다는 계획은 애시 당초 접어야 할 지경이다.

가장 핵심인 사원은 역시 교보대사의 채취가 담뿍 배어 있는 단조가랑(壇上伽藍)으로 이 구역에서만 일본의 국보 6점이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고야산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맞이하는 건물은 819년 교보대사가 세웠다는 가람의 본당격인 곤도(金堂)다.

목조건물이다 보니 화재사고에 많이 노출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1932년 일 곱 번째 소실 끝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단조가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공개적인 행사는 모두 곤도에서 이루어진다. 약간은 한옥 같은 느낌의 정갈함이 인상적이다.

<사진 - 목조건축물들이 특히나 많이 눈에 띄는 단조가랑>


곤도 바로 옆에 있는 미에도(御影堂)는 고보대사가 머물던 불당이었던 곳으로 그가 죽고 난 후, 왕자출신의 제자였던 신요친왕이 직접 대사의 초상화를 그려 바쳤다고. 미에도라는 뜻도 왕가에서 직접 하사한 그림이 있는 건물이라는 의미. 선사의 나지막한 지붕이 정감 있는 건물인데, 역시 소실된 것을 1847년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곤폰다이토(根本大塔). 우리식으로 읽으면 근본대탑이다. 고보대사가 고야산에 터를 잡고 단조가람을 창건하던 당시 진언종의 근본도량으로 정해뒀던 곳이다. 원래 붉은 색 건물인데다 최근 칠을 새로 한 탓에 솔직히 고탑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불탑과 불당을 엄격하게 구분한 한국의 절과 달리 곤폰다이토는 탑이자 불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티베트나 미얀마에서 볼 수 있는 복발탑(밥그릇을 엎어놓은 종 모양의 불탑)에 1층을 전각으로 꾸미고 기와지붕을 얹어놓은 모양새다.


곤폰다이토에서 또 하나의 핵심건물인 곤고부지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려야 할 곳은 후도도(不動堂)이다. 일본의 국보에 등재된 이 건물은 1197년 건립된 고야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일본 본토에서는 한 번도 외국의 침략을 받지 않은 탓에 이런 건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숱한 침략에 시달린 한국인으로서는 조금 부러운 느낌.

신라시대 때의 황룡사 목탑은 아시아 최고였다고는 하지만, 몽골인들이 고려를 침공하며 모두 불타버렸다.

그게 남아있었다면 이보다 더 우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보로 지정된 후도도는 입장 불가. 그저 외관만을 바라볼 뿐.

지금까지 1000년의 세월을 버텨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후도도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사진- 턱받이를 한 작은 불상들이 특히나 많은데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이제 곤폰다이토와 함께 단조가랑의 마지막 핵심중 하나인 곤고부지(金剛峯寺), 즉 금강봉사로 향한다. 전형적인 직선형의 일본 처마, 그리고 건물입구의 아치가 인상적인 건물은 일본 전역에 약 3,600개의 말사를 거느린 진언종의 총 본산이다. 원래 곤고부지라는 말은 교보대사가 고야산에 사원을 건축하면서 사용한 단어다.

곤고부지가 지금의 건물명으로 쓰인 것은 1869년 이 일대의 관리를 진언종이 되찾아오면서 이름도 바꾼 것이라고 한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데다, 동서 54m, 남북 63m로 규모도 단조가랑에서 가장 큰 규모다. 기와지붕에 새겨진 부조의 디테일이 압권이니 반드시 감상하자.


일본 제일의 명당, 오쿠노인

단조

가람에서 오쿠노인까지는 좁은 외길로 차로 10여분 소요된다. 835년 교보대사가 입적하고 이 곳 오쿠노인(奥"フ院)에 묻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명사의 무덤과 불교 성지의 이미지가 더해지며 교보대사 무덤 옆으로 계속해서 무덤이 하나둘 생겨났다.

일반 백성부터 바쿠후의 쇼군들, 심지어는 황가의 사람들까지. 그렇게 생겨난 무덤이 20만 기에 달한다. 뭐 이쯤 되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묘지라고 불러야 할 지경.

<사진 - 오쿠노인에 있는 무덤들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가장 오래된 무덤은 500년 이상, 아마 잘만 찾아보면 이 달에 새로 만든 무덤도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시간의 흔적은 비석에도 남아있었다. 어떤 비석에는 파란 이끼가 마치 회색을 푸르게라도 바꾸고 싶은 듯이 자라나고 있었다.

으스스한 느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일본인들의 위트랄까? 로켓 모양의 비석이 있어 물어보니 생전에 로케트를 연구하던 과학자였단다. 일본 제일의 커피회사 UCC회장도 여기 묻혀있는데 이 분의 비석위에는 커피 잔이 조각되어 있다.


무덤이라곤 하지만 꽤 볼거리가 많은 길. 어쩌면 이게 일본의 디테일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2㎞를 모두 걸어 교보대사의 사당 근처까지 왔다. 오른쪽에 지장보살(地藏菩薩)무리에 물을 붙는 사람들이 보인다.

지장보살은 지옥문 앞에 서서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어 지옥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결코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한 불교적 자비의 대명사다.

불교설화에 의하면 지장보살에게 물을 바치면 불지옥에서 엄청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몇 방울이나마 물이 전달된다고.

아무도 모르는 영계 사람들은 그저 먼저 간 가족이 혹시라도 고통을 덜 당할까 싶어 습관처럼, 때로는 애절하게 지장보살에게 물을 떠 바친다.

<사진 - 지장보살에게 물을 부으며 떠난 사람들의 편안함을 비는 사람들>

교보대사의 사당 입구에 있는 다리 고뵤바시부터는 사진촬영도 모자 착용도 금지된다. 오쿠노인에서 가장 신성시 되는 구역으로 민간신앙에서는 아직도 교보대사가 이 곳 어딘가에서 수행을 하며 살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진언종에서도 그 믿음을 믿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사당에는 하루 두 차례 공양이 올라간다.


고야산은 사실 일반인이 여행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온통 불교사원과 무덤. 여행이 밝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한국인들에 고야산은 그래서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멀고도 험하다.

성지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 중 하나는, 모든 종교의 성지들은 성지특유의 기운이 있다. 요즘 일본인들은 ‘파워 스팟’이라는 말을 잘 쓰는데, 어쩌면 성지의 무거운 느낌을 팬시하게 표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바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행은 들뜸의 연속이다. 하지만 들뜸은 사실 우리 일상 속에 있는 감정기복의 연속일 뿐이다. 때로는 도시를 벗어나 깊은 침묵 속에서 자신과 조우할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만약 그럴만한 곳을 찾고 있다면 고야산은 꽤 괜찮은 선택이다.


와카야마현 관광 홈페이지 www.sekaiisan-wakayama.jp/index.html (영어 지원 가능)

사단법인 와카야마현 관광연맹 홈페이지 http://www.wakayama-kanko.or.jp/world/korea/index.html (한국어 지원 가능)

고야산 홈페이지 www.koya.org (영어 지원 가능)


(참 좋은 관광정보 투어코리아 2010년 10월호, Tou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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