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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이긴 이세돌의 힘, ‘신안 비금도 시금치’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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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이긴 이세돌의 힘, ‘신안 비금도 시금치’ 덕?
  • 글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19.09.16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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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이야기가 있는 섬⑧ 섬 먹여 살리는 특산물
▲ 비금도 하트해변

전남 신안 비금도는 천일염과 시금치 ‘섬초’가 오래 전부터 산출돼 원조격이라 할만큼 유명하다.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바둑기사 이세돌이 태어난 곳으로, 비금도의 시금치가 워낙 유명한 덕에 이세돌의 힘은 시금치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을 거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다.

비금도가 섬초(시금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소금의 섬’이라고 불리는 비금도의
염전이 불황을 겪으면서다. 염전이 불황을 겪고 쇠퇴하게 됐고, 불황 타개를 위해 새로운 소득원이 절실해진 것이다.

▲ 비금도 섬초

비금도에서 시금치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58년부터라고 하는데, 죽림리에 사는 최남산이란 사람이 종자를 사들여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가능성이 타진됐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그 재배가 더욱 활발해져서 재배면적이 넓어졌고 생산량이 확대됐다. 수대리와 내월리 등 수심이 깊고 산도 많아 염전개발이 어려웠던 서부지역에서는 특히 시금치 재배가 더 일찍 발달했다고 한다.

▲ 비금도 대동염전

지금은 비금도 전체의 절반 농가가 780여ha에 시금치 ‘섬초’를 재배하고 있다. 비금도에서 나는 시금치는 서울 사람들이 석 달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에 이른다고
한다.

섬을 온통 파랗게 메운 겨울 시금치는 게르마늄 토양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서 비타민 성분이 많으며 잎이 두텁고 신선도가 좋다. 마트에서 섬초라는 이름으로 팔
리는 비금도 시금치는 전국 유통량의 40%를 차지한다.

▲ 섬초 수확하는 모습

비금도가 본래 ‘소금의 섬’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가산선착장에는 ‘수리차 돌리는 박삼만’이라는 조형물이 대합실 근처에 세워져 있다. 박삼만 씨는 비금도에 천일제염법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다.

비금도는 호남지방에서는 맨 처음인 1946년에 천일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소금의 섬’답게 비금도에서는 소금밭이 끝없이 이어진 진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비금도의 먹거리였던 소금염전은 1990년대 후반 소금시장이 개방되면서 점차 설 자리
를 잃었다.

중국산 값싼 소금이 엄청난 물량공세로 밀고 들어오면서 비금도 천일염의 유명세도 밀리고 말았다.

비금도에 간다면 이세돌 바둑기념관에 들려보는 것도 좋겠다. 비금북부길 따라 지동마을로 향해 달리다보면 바둑판 형상의 건물 ‘이세돌 바둑기념관’이 나온다.

바둑천재로 불리는 이세돌이 이곳 지동마을 출신이라서 그가 태어난 마을 옆의 폐교를 기념관으로 조성한 것으로, 기념관 1층에는 다목적 대국장이 마련돼 있고 이세돌 관련 자료 전시관이 신안군 특산품소금 전시장과 함께 있다. 2층에 올라가 보니 무료 바둑살롱이 마련돼 있었다.

전시관에는 1983년생인 이세돌이 아홉 살 때 바둑공부를 위해 상경하기 전까지 비금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기록돼 있다.

▲ 이세돌기념관

한편, 비금도가 도초도와 다리(서남문대교)로 연결되면서 두 섬은 이전보다 훨씬 왕래가 빈번해졌다. 937미터의 이 연도교는 1996년도 8월에 개통돼 비금도와 도초도 지역 주민들이 다리를 통해 수월하게 왕래함은 물론, 농수산물 유통과 해상관광 촉진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도서 이재언 ‘한국의 섬’/ 사진-신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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