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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서 삼라만상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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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서 삼라만상과 마주하다’
  • 오재랑 기자
  • 승인 2014.09.19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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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있을 줄이야~
▲배론성지


[투어코리아=오재랑 기자] ‘내륙의 바다’ 청풍호를 품고 있는 충북 제천은 물 만큼이나 산도 많다. 하늘과 물을 벗 삼아 즐기는 모험 레포츠 활동도 활발한 곳이다. 이런 제천을 일컬어 사람들은 ‘천혜의 관광자원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어디 이뿐이랴. 청풍면 도곡리 청풍호반에서 비로봉 정상(해발 531m)까지 2.94㎞ 구간을 오르내리는 청풍호 모노레일은 산행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등산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다시 한 번 그 멋에 취하고 싶어 제천으로 여행을 나섰다.

▲제천 청풍호와 수경분수

청풍호의 ‘명물’, 관광모노레일
청풍면 도곡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94㎞의 거리를 운행 중인데, 6인승 12대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4분단위로 운행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동안 눈앞에 드리워진 비봉산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모노레일은 현장에서 표를 구하거나 홈페이지(www.capirpa.co.kr)의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데, 요금은 성인 왕복 8,000원, 20인 이상 단체나 어린이, 65세 이상은 6,000원이다. 지난해에만 9만9,000명의 관광객이 모노레일을 이용했고, 올해는 15만 명 정도가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천관광 1번지, ‘청풍문화재단지’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한 문화재와 보물, 민가들을 옮겨와 원형 그대로 복원해 놓은 곳으로, 일면 작은 민속촌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팔영루(八詠樓)는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으로 천정에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데, 옛날 풍수 도사이자 왕사였던 천공 스님이 먼 훗날 청풍에 큰 수해가 날 것으로 보고, 지세를 눌러주기 위해 그려 넣은 것이란다. 금병헌(錦屛軒)은 청풍부 동헌으로 부사가 집무를 보거나 집회를 갖던 장소인데, 단청을 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그 옆쪽 응청각(凝淸閣)은 옛날 선비들이 유숙하던 곳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이웃 단양 군수 시절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

▲청풍 한벽루

청풍 한벽루(寒碧樓.보물 제 528호)는 우리나라 3대 익랑(날개가 달린 누각’. 남원 관한루. 밀양 영남루)이 달린 누각 중 하나로,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 부속 건물이란다. 현재 건물은 1972년 대홍수로 무너졌던 것을 원래 양식대로 복원한 것이다. 문화재단지를 다 구경했다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인골이 발굴된 향석리고인돌과 향교, 야생화 단지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청풍문화재단지 고가 부엌


함께 보면 더 좋은 풍치 ‘의림지’
의림지는 호반 둘레가 약 2㎞에 이르는데, 축조 연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진흥왕 (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시초라는 설이 있다. ‘우륵’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내며 가야금을 탔다는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 바위)와 물을 마시던 ‘우륵정’이 지금도 남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의림지는 2006년 명승 제20호로 승됐다. 충청지역을 호서(湖西)라고도 부르는데, 바로 의림지의 서쪽 지역이란 뜻이다. 의림지는 경승지로도 이름이 나있는데, 제방과 저수지 주변으로 수백 년 묵은 노송과 수양버들,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숲 사이로 영호정, 경호루, 우륵정 등의 누정이 운치를 더한다.

▲의림지


단풍 명산 ‘금수산’
수려한 산세와 자연풍광이 뛰어나 해매다 수만 명의 등산객이 몰려오는 명산이다. 계곡에는 용담폭포와 선녀탕을 품고 있다.


이 산의 본래 이름은 백암산 이었는데, 단양 군수였던 퇴계 이황(1501∼1570)이 산의 고운 단풍에 반해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고 해서 금수산(錦繡山)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금수산은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아름다운 설경으로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금수산의 용담폭포와 선녀탕에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옛날 주나라 왕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친 폭포를 보고, 신하들을 시켜 동쪽으로 가서 대야에 비친 폭포를 찾아오라 했는데 바로 그 폭포가 바로 용담폭포와 선녀탕 이었다”고 한다.

등산은 상천리 코스를 많이 애용하는 데 용담폭포와 선녀탕을 볼 수 있고, 8부 능선에서는 금수산의 명물 족두리 바위와 독수리 바위를 구경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월악산과 소백산 천문대, 황장산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능강솟대문화공간’
400여점의 다양한 솟대 작품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주변에는 동강할미꽃, 하얀 금낭화, 매발톱, 산 작약 등 이름도 어여쁜 우리나라 희귀 야생화와 소나무, 미선나무 등 다양한 수목들이 어울려 한 폭을 풍경화를 그려낸다.


능강 솟대문화공간(www.sotae.co.kr)을 지키고 있는 수 백여 점의 작품들은 정형화되거나 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능강솟대문화공간

윤영호 대표가 산을 누비며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조형 언어로 재구성 했기에 살아 있는 듯 하고 모양새만큼이나 의미도 각기 다르다.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전국 명인, 명품, 명소화 대상 3곳 중 한 곳으로 ‘솟대는 우리 인간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늘을 향해 품는 희망의 안테나’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솟대는 삼한 시대 ‘소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방에 따라 소줏대, 솔대, 별신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천 한방산업의 핵 ‘한방엑스포공원’
‘2010 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www.expopark.kr)가 열린 현장으로 한방생명과학관, 국제발효박물관, 약초허브전시판매장, 엑스포 시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방생명과학관에선 우리의 신체, 질병의 역사, 한의약의 원리·진단, 치료법 등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다.

▲한방엑스포공원

국제발효박물관에서는 과거 발효식품의 유래와 효능을 통해 발효식품의 발전 방향을 알아보고, 현재 우리 실생활에 응용되는 세계 각국의 발효 식품들과 발효의 방법, 발효의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약초허브전시판매장은 국내에서 재배·생산, 자생하는 한방약초와 외국의 약용허브식물이 자라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간이다.


약초탐구관은, 해외기증약재(광물, 동물)와 동의보감 약재를 전시하고 있고, 자연탐구학습은 물론 약초 해설사를 통해 약초의 효능을 익힐 수 있다.한방엑스포어린이공원은 체험을 통해 어린이의 눈높이로 한방을 이해하는 교육과 놀이의 복합 공간이다.


박달과 금봉이의 슬픈 연가 ‘울고 넘는 박달재’
제천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다. 원래 이름은 ‘이등령’인데, 조선 중엽 과객인 ‘박달’과 평동리 살던 ‘금봉’이라는

처자의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박달재에는 이 둘에 대한 전설이 전하는데, 그 내용이 가슴을 저민다. 경상도 선비 ‘박달’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지금의 백운면 평동마을에서 ‘금봉이’를 만나 몰래 사랑을 나누고, 과거에 급제하면 돌아와 백년가약을 맺겠다는 언약을 했다. 금봉이는 그런 박달을 위해 도토리묵을 쒀 가는 길에 요기하도록 박달의 허리춤에 매달아 주었다.


박달이 떠난 후 금봉은 마을 밖에서 박달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건만 한참을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과거에 낙방한 박달이 금봉이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야 슬픔에 잠긴 채 터벅터벅 돌아오다가 금봉의 집을 찾았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금봉이가 자신을 기다리다 지쳐 3일 전에 죽었다’는 소식뿐이었다.


박달이 식음을 전폐하고 슬피 울며 지내다, 하루는 고갯마루 바라보니 금봉이 춤을 추면서 고개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박달은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 금봉을 잡으려고 했으나 손이 미치지 못했다. 간신히 고개 위에서 금봉을 끌어안건만 금봉이는 이내 사라지고 박달은 그만 허공 속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고개를 박달재로 불렀다 한다. 박달재 고개에 오르면 박달과 금봉이가 애틋한 정을 나누며 서 있는 동상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박달재를 울면서 넘었던 데에도 이유가 있다. 요즘 박달재는 터널이 뚫려 10분이면 휘~익 지나가지만, 옛날에는 박달재와 다릿재를 걸어 넘으려면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게다가 고갯길이 험하고, 박달나무가 우거져 호랑이 같은 산짐승과 행인의 봇짐을 탈취하려는 도둑들까지 설치는 통에 대낮에도 쉽게 넘을 수 없는 고개였다고 한다.


때문에 박달재를 넘어 시집가는 색시들은 친정에 다시 올 수 없는 길을 가야하기에 고개를 넘으면서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 고개가 ‘울고 넘는 박달재’가 된 이유다.


우리나라 가톨릭 성지 ‘배론’
가톨릭 성지로 배론(舟論)이란 이름은 지형이 배 밑바닥과 같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배론성지는 1801년 황사영 순교자가 머물며 백서를 쓰고, 사제 양성을 위한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져 신학교육이 이뤄진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 중 한명인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의 분묘가 남아있고, 장주기 성인을 비롯한 여러 명의 순교자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1801년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신유박해)가 시작되자 많은 천주교인들이 배론으로 숨어들어 옹기 만들어 팔면서 삶을 이었다고 한다.


배론성지는 공원처럼 잘 꾸며져 둘러보기에 좋은데, 성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입구에서 안내를 받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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