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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가면 영산강 따라 풍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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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가면 영산강 따라 풍류가 흐른다!
  • 오재랑 기자
  • 승인 2013.11.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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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삼합에 막걸리 한잔

[투어코리아=오재랑 기자] 나주에 가면 뜨끈뜨끈한 곰탕과, 하얀 속살에서 육즙이 샘물이 솟듯 하는 배가 입을 즐겁게 한다. 어디 이뿐이랴. 영산포에 가면 홍어 삼합이, 구진포 나루에 가면 장어구이가 미식가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영산강에서는 황포돛배가 옛 향수를 자극한다.

아주 옛날 나주는 마한문화의 중심지였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과 장화왕후가 버들 잎 사랑을 싹틔운 곳이다. 인걸도 많아 세종때 한글창제를 도운 신숙주, 거북선을 발명한 나대용, 천재 시인 임제 등이 나주에서 태어났다. 그 흔적을 찾아 나주 유람을 떠나본다.

▲금성관

목사내아 금학헌(전남 문화재자료 제 132호)
조선시대 나주목사의 살림집으로 상류 주택의 안채를 쏙 빼닮았다. 성안에 있는 관아 건물 중에서 객사 금성관, 동헌의 출입문인 정수루와 함께 원형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금학헌(琴鶴軒) 마당에는 울퉁불퉁 혹이 달린 고목 한그루가 눈에 띄는 데, 5백 살이나 된 팽나무로 벼락을 맞고도 살아 남았단다.

▲목사내아

벼락을 맞고 살아난 뒤로 팽나무에는 전설이 하나 생겼는데,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령스런 기운을 지닌 것으로 믿고 있다.

금학헌은 문화재이면서 숙박 체험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채롭다. 숙소 중에는 역대 나주목사 중에서 특히 존경을 받았던 유석증(兪昔曾) 목사와 김성일(金誠一)목사의 이름을 딴 방이 있다. 이곳에서 목사의 기(氣)를 받아간 뒤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예약을 해야만 숙박이 가능하다.

널뛰기와 투호 놀이 등 전통 민속 체험도 할 수 있고 인근에 나주읍성권의 문화유산과 곰탕 거리가 있어 전통의 멋과 맛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나주향교

나주향교 대성전
나주 향교의 중심인 대성전은 보물 제394호로 공자를 비롯한 27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은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 중에서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교 건축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나주향교는 이외에도 명륜당과 동·서재 등 다른 향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11칸의 규모를 자랑한다. 향교의 배치는 뒤쪽에 강학 공간이, 앞쪽에 제사 공간이 있는 ‘전묘 후학’의 형태로 조선시대의 향교 건축 형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나주향교 대성전

완사천(전라남도 기념물 제93호)
완사천은 원래 조그마한 옹달샘으로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주위엔 장화왕후의 조각상이 있고 산책로와 함께 공원이 조성돼 있다.

장화왕후(莊和王后)는 나주의 호족인 다련군 오씨의 딸로 왕건 대장군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나주로 출정 왔을 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장화는 이곳에서 목말라 하는 왕건에게 물을 건네면서 체하지 않고 천천히 마시라며 수양버들을 띄워 주었는데 왕건이 이 지혜에 감동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완사천

한국천연염색 박물관
나주시는 고대로부터 면직물, 실크 및 천연염색 문화가 발달한 도시였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전과 다른 점은 천연 염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주의 전통천연염색은 쪽 염색 기술이 유명한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보유자인 정관채 선생이 중심이 돼 계승되고 있다.

영산강변에 위치한 나주시천연염색박물관은 천연염색작품전시, 체험, 교육, 연구개발 및 산업화지원 등 천연염색의 보급과 산업화 부분에서 혁신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박물관은 상설전시관, 기획전시관, 체험장, 제품판매장, 세미나실, 연구실이 갖춰져 있다.

박물관 옆 공방에선 작품 활동과 함께 매주 토요일에 경매가 이루어진다.

▲한국천연염색박물관


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제 404호)
고분은 삼국시대 이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높았던 지배층의 무덤이다. 이 지역엔 원래 7기 정도가 더 있었으나 경지정리를 하면서 7기가 없어졌다고 한다.

복암리 고분군 중에서 ‘3호분’은 모양이 독특하다. 사다리꼴 모양에 한 변의 길이가 약 40m인 이 고분에는 41개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 3층으로 쌓여있다.

일종의 아파트형 무덤인데, 이런 특이한모양은 한반도에서 유일하단다. 발굴 조사 결과 이 고분에선 옹관묘 목관묘 석곽묘 석실묘 석곽옹관묘(석곽 내부에 옹관을 넣은 무덤) 등 영산강 유역에 나타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묘제가 확인됐다.

3층 고분 맨 아래층은 옹관묘가, 가운데층엔 석실묘 옹관묘 석곽묘가, 맨 위층엔 석실묘가 배치됐다. 고분 조성은 3세기에서 7세기까지 400여년에 걸쳐 이뤄졌다.

이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 토착 세력의 옹관묘에서 백제식 석실묘로 변해간 것으로, 토착집단이 백제에 편입되

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복암리 고분

황포돛배 선착장
황포돛배는 과거 영산강의 주된 운송 수단이었다. 서남해의 소금과 젓갈, 해산물을 영산포까지 실어날랐다.

황포돛배는 승선 인원이 3명 이상이면 언제든 운항하며, 거리는 10km로 영산포 선착장에서 다시면 회진 일원을 왕복한다.요금은 성인 8,000원, 청소년과 군인은 6,000원, 어린이 4,000원, 65세 이상과 유아는 2,000원을 받는다. 운항 시간은 오전 10시와 11시, 오후1시부터 5시까지 1시간 간격이며, 동절기인 11월~2월까진 오후 4시까지만 운항한다.

왕건호는 황포돛배보다 2,000원 비싼 요금으로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운항한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다.

▲죽산보

영산포 등대(등록문화재 제129호)
원래는 등대가 아니었다. 이 등대는 1915년 철근콘크리트로 건립됐는데, 원래 용도는 수위 측정이었다고 한다.

영산포는 해상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인데, 지역적 역사적인 필요에 의해 수위 관측소가 생겼고, 그 상부에 등불을 밝혀 배를 인도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등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도 영산강 뱃길이 끊기면서 상실되고 말았다.

영산나루
영산나루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전진기지로 활용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수탈의 주체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이고, 그 잔재인 문서곡이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 기관이다. 1909년 동양척식회사 영산포지점을 설립하고 영산포 배후 농지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아픔을 뒤로 한 채 영산나루에는 250년 된 팽나무가 서 있고 차나 음식 와인 등 연회를 할 수 있는 세인트리 카페와 나루재라는 펜션이 들어서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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