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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에 가면 사색에 잠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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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에 가면 사색에 잠기는 이유!
  • 유경훈 기자
  • 승인 2022.07.30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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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과 태백산이 만나는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위치한 경북 영주시는 예부터 정감록 10승지 중 천하 제1승지로 꼽힐 정도로 안전하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우며, 사람들 손끝이 닿은 곳마다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선비의 고장’이다.

여름철 경북 영주를 여행하면 이런 재미가 있다.
뒷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에 동이 트고, 장독대 감나무로 마실 나온 새들의 지저귐에 눈을 뜬다. 곧 있으면 매미 소리가 귀청을 울릴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무섬마을 내성천을 가로지른 태극 모양의 외나무다리는 그윽한 풍경을 자아낸다. 선비촌의 만개한 배롱나무꽃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실천한 옛 선비들의 아름다운 삶을 떠올리게 하고, 울창한 솔숲 사이로 보이는 소수서원과 개울가 정자에선 금방이라도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휴가철이 닥치자 ‘어디로 갈까’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올 여름 여행코스를 유불(儒佛) 문화의 본고장' 영주로 잡아보자. 

무섬마을과 소수서원, 선비촌 그리고 오는 9월 3일 처음으로 일반에 소개되는 선비세상에서 선비처럼 먹고 입고 보고 배우며 선비정신을 체험하고, 부석사의 멋진 풍광을 가슴에 담아보자.

여름이 깊어가는 7월 중순(21~22일) 수도권 관광 전문기자 영주시 팸투어에 참가, ‘선비의 고장’ 영주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K-문화테마파크 '선비세상'
 
소수서원 인근에 터를잡은 '선비세상(SUNBEE WORLD)'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K-문화테마파크로 내·외국인이 조선의 선비처럼 먹고, 자고, 입고, 익히고, 즐김으로써 선비정신을 함양하며 K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됐다.

다도체험
다도체험

선비세상은 96만㎡의 부지에 한옥, 한복, 한식, 한지, 한글, 한음악 등 6개의 테마촌이 들어섰다.

선비세상은 오는 9월 3일 정식 개관에 앞서 오늘(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사전 신청자 1일 1500명을 대상으로 주말 무료 관람을 실시한다.

선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한옥문화관
선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한옥문화관

선비의 숨결이 느껴지는 선비촌

선비촌은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한 장소로, 선비들의 정신을 담은 수신제가(修身齊家), 입신양명(立身揚名), 거무구안( 居無求安),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등 4가지 구역으로 조성됐다.

시인 묵객들이 사랑한 ‘선비의 꽃’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만개해 선비촌 고택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시인 묵객들이 사랑한 ‘선비의 꽃’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만개해 선비촌 고택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선비촌 초가집 뒤뜰의 장독대 옆에 예쁘게 피어난 참나리꽃.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소녀가 수줍음을 타는 것처럼 보인다.
선비촌 초가집 뒤뜰의 장독대 옆에 예쁘게 피어난 참나리꽃.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소녀가 수줍음을 타는 것처럼 보인다.
선비촌의 또다른 볼거리는 흙담 길이다.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고택 사이를 오가는 흙담 골목은 소박하고 은은한 풍경으로 다가와 정말 정겹다. 
선비촌의 또다른 볼거리는 흙담 길이다.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고택 사이를 오가는 흙담 골목은 소박하고 은은한 풍경으로 다가와 정말 정겹다. 

세월도 잠시 숨을 고르는 곳,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시대 사찰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등재돼 있다. 부석사((浮石寺)라는 이름은 한문을 풀이하면 '공중에 뜬 돌'이란 뜻인데, 사찰을 창건한 통일신라시대 승려 의상대사(625~702)를 흠모하던 당나라 선묘 낭자와 얽힌 전설에서 유래했다.

내용인즉슨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할 때, 그를 사모하던 선묘라는 여인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의상은 '승려'의 신분이라 선묘의 연정을 거절하고 신라로 귀국하자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의 안전한 뱃길 귀국을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의상이 부석사를 지으려는 터가 도적떼들의 소굴(巢窟)이었던 탓에 어려움을 겪자 선묘가 큰 바윗돌(해설사에 의하면 1리, 즉 400미터 규모)로 변해 도적들 머리위를 떠다니며 위협을 가해 소굴에서 도적들을 쫓아냈다고 한다. 그 큰 바윗돌이 현재 부석사 뒤뜰에 놓여 있는데, 땅에서 살짝 떠 있어서 바위 밑으로 줄을 넣으면 통과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절 이름에 뜰 부(浮), 돌 석(石)을 써서 부석사라 했다고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전방 풍경은 첩첩이 겹친 녹색 능선들이 마치 파도가 바람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전방 풍경은 첩첩이 겹친 녹색 능선들이 마치 파도가 바람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무량수전 앞마당의 안양루(安養門)은 아래에서 보면 2층 누각이고, 무량수전에선 1층 건물로 보이는 데 '누각과 문' 두가지 기능을 한다. 안양(安養)은 극락을 뜻하므로 극락세계로 가는 입구인 셈이다.
무량수전 앞마당의 안양루(安養門)은 아래에서 보면 2층 누각이고, 무량수전에선 1층 건물로 보이는 데 '누각과 문' 두가지 기능을 한다. 안양(安養)은 극락을 뜻하므로 극락세계로 가는 입구인 셈이다.
부석사에서 무량수전은 극락세계이고, 아미타불(또는 무량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부석사에서 무량수전은 극락세계이고, 아미타불(또는 무량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무량수전은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라는 배흘림 기둥이 있어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목조 건축물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사뿐히 고개를 쳐든 지붕의 추녀 곡선, 그 추녀와 기둥의 조화 , 간결하고 절제된 주심포로 절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무량수전은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라는 배흘림 기둥이 있어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목조 건축물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사뿐히 고개를 쳐든 지붕의 추녀 곡선, 그 추녀와 기둥의 조화 , 간결하고 절제된 주심포로 절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천년 고찰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676년)에 의상대사가 당나라의 신라 침공 야망을 간파하고 귀국해 호국의 일념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천년 고찰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676년)에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중, 당나라의 신라 침공 야망을 간파하고 귀국해 호국의 일념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선묘낭자가 변해 도적때를 물리쳤다는 큰 바위로, 현재 무량수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바윗돌이 땅에서 살짝 떠 있어서 바위 밑으로 줄을 넣으면 통과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리 저리 살펴봐도 전설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선묘낭자가 변해 도적때를 물리쳤다는 큰 바위로, 현재 무량수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바윗돌은 공중에 살짝 떠 있어 바위 밑으로 줄을 넣으면 통과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리 저리 살펴봐도 전설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고즈넉함이 살아 있는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350도를 돌아 흘러간다.  그리하여 마을 지형이 마치 물위 떠 있는 썸 같다해서 수도리(水島里)라고 불렸다. 한글로 하면 물섬마을인데 '발음이 어렵다보니 ㄹ이 탈락해 무섬마을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무섬마을은 풍수지리학상으로는 '매화 꽃이 피는 매화 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 지형이라 해서 길지(吉地) 중의 길지로 꼽힌다.

무섬마을에는 전통 고택 더 유명한 것이 있다. 내성천 물위를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바로 그것으로,  무섬마을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건너고 싶어 한다.
무섬마을에는 전통 고택보다 더 유명한 것이 있다. 내성천 물위를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바로 그것으로,  무섬마을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건너고 싶어 한다.
350년 종부의 삶이 이어져 오는 '만죽재'무섬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고가(古家) 만죽제(경북도 민속문화재 제93호)는 반남박씨(潘南朴氏) 판관공파(判官公派)의 종가(宗家)이자 마을에서 가장 오래(360년)된 가옥이다.만죽재는 1666년에 박수(朴 檖)가 입향해 지었다고 하는데, 그집 제일 윗터에 자리잡은 섬계초당은 마루에서 외나무다리와 강과 백사장를 함께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최고 명당이며 자연과 함께하는 마음의 쉼터이다.만죽재 고택은 입향 후 현재까지 13대 360년간 적자 장손이 한터, 한집에서 거주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360년 종부의 삶이 이어져 오는 '만죽재': 무섬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고가(古家) 만죽제(경북도 민속문화재 제93호)는 반남박씨(潘南朴氏) 판관공파(判官公派)의 종가(宗家)이자 마을에서 가장 오래(360년)된 가옥이다.
만죽재는 1666년에 박수(朴 檖)가 입향해 지었다고 하는데, 그집 제일 윗터에 자리잡은 섬계초당은 마루에서 외나무다리와 강과 백사장를 함께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최고 명당이며 자연과 함께하는 마음의 쉼터이다.만죽재 고택은 입향 후 현재까지 13대 360년간 적자 장손이 한터, 한집에서 거주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만죽재는 1666년에 박수(朴 檖)가 입향해 지었다고 하는데, 그집 제일 윗터에 자리잡은 섬계초당은 마루에서 외나무다리와 강과 백사장를 함께 볼 수 있는 명당이며 자연과 함께하는 마음의 쉼터이다.만죽재 고택은 입향 후 현재까지 13대 360년간 적자 장손이 한터, 한집에서 거주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가마타고 외나무다리 건너 신행:반남박씨(潘南朴氏) 판관공파(判官公派)의 13대 종손(박천세)의 장손(14대)이 얼마전 결혼 후 시골 외나무다리를 건너 무섬마을로 신행오는 모습. 
가마타고 외나무다리 건너 신행:반남박씨(潘南朴氏) 판관공파(判官公派)의 13대 종손(박천세)의 장손이 얼마전 혼인을 한 뒤 외나무다리를 건너 무섬마을로 신행오는 모습. 

선비의 품격 소수서원

우리나라 최초의 사약서워 조선 중종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말 유학자이자 최초의 성리학자인 회헌 안양 선생을 기리고자 배운동 서원을 건립한데서 비롯됐다. 그후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조정에 건의'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게 됐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해 서원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해 서원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소수서원을 찾은 관광객이 수령이 500년 된 은행나무 및 소나무 숲 사잇 길을 산책하면서 소수서원 특유의 여름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소수서원을 찾은 관광객이 수령이 500년 된 은행나무 및 소나무 숲 사잇 길을 산책하면서 소수서원 특유의 여름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강학당: 유생들이 모여 강이를 듣던 곳이며, 사방으로 툇마루를 둘러 놓은 것과 배흘림 기둥 양식이 특이하다. 현대판 선비가 강학당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강학당: 유생들이 모여 강이를 듣던 곳이며, 사방으로 툇마루를 둘러 놓은 것과 배흘림 기둥 양식이 특이하다. 현대판 선비가 강학당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
<strong>경렴정:  </strong>서원 담 밖 풍광이 수려한 곳에 위치해 선비들이 시연을 배풀고 호연지기를 가꾸던 곳.
경렴정은 서원 담 밖 풍광이 수려한 곳에 위치해 선비들이 시연을 배풀고 호연지기를 가꾸던 곳이다.
영주시 팸투어단 기자들이 소수서원을 찾아 산책하며 냇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영주시 팸투어단 기자들이 소수서원을 찾아 산책하며 냇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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