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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섬’이야기!④ 갸륵한 부자지정의 서천 유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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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섬’이야기!④ 갸륵한 부자지정의 서천 유부도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22.01.07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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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서천 유부도
서천 유부도

충남 서천의 유부도(有父島). 아마도 우리 국민들 중에서 유부도를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유부도는 지리상으로는 전북 군산과 가까워 생활권 또한 군산에 속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유부도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어청도, 연도, 개야도, 죽도는 행정상으로 군산에 속하는데, 한참 남쪽에 있는 유부도는 충남에 속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일본인들이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자신들의 편의대로 했기 때문이란다. 이 때문에 지금도 충남과 전북이 티격태격 분쟁을 벌이고 있다.

서천 유부도
서천 유부도

유부도는 드넓은 모래밭과 개펄이 장관이다. 한 달에 보름 정도 모래와 펄흙이 섞인 단단한 바다 밑이 드러난다. 물이 빠지면 모래밭이 드러나 주변의 작은 섬들과 연결되지만, 물이 들어오면 독립된 섬이 된다.

간만의 차이가 심한 서해의 특성상 물이 빠지면 배가 갯벌 위에 걸리기 때문에,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육지에 나가려면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군산 여객선터미널이 눈에 잡힐 듯 가까이 있지만, 교통의 오지에 속하는 이유다.

유부도에서 모든 생활 방식은 물때를 따라서 움직인다. 썰물이면 생업을 위하여 바다에 나가고, 밀물이면 배를 띄워 육지인 군산으로 나간다. 주민들은 이곳 들판을 농토로 삼고 경운기를 몰고 다니면서 바지락을 채취한다. 이곳 개펄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것은 꼬막과 대합, 죽합이다.

서천 유부도
서천 유부도

이 곳엔 부자의 정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와 아들이 왜구를 피하여 배를 타고 황해로 나가다 아들은 유자도에, 아버지는 유부도에 내렸다. 아버지는 유부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아들은 유자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면서 생활하였다. 항상 아버지가 걱정이 된 아들은 잡은 고기를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 유부도에 왔었다. 하루는 육지에 나갔다가 이상한 총성을 들은 아들이 이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리려고 유부도를 찾았는데, 아버지가 오랜 기간 병환에 시달린 듯 얼굴이 파래져 거동을 못하고 있었다. 아들은 급히 육지로 약을 구하러 갔다 왔지만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였다.

왜구의 침범을 피해서 피난 왔다가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시체를 바다가 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묻고, 자기 섬으로 돌아와 생업에 종사하였다. 그리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는 유부도에 와서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냈다. 그러다가 늙어서 유자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후 비가 오려고 하는 구질구질한 날이나 비 갠 날에 이 섬 근처를 오가다 보면 유부도 쪽에서 유자도 쪽을 향해 아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에 응하는 듯 유자도에서는 아버지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사공들은 아버지가 살던 섬을 유부도라 부르고, 아들이 살던 작은 섬을 유자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유부도에는 염전을 경영하기 위하여 들어온 사람, 김 양식을 위하여 들어온 사람, 어장을 하려고 들어온 사람, 평안한 삶을 추구하고자 온 사람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제각각 목적을 갖고 들어왔지만, 그들이 뜻한 대로 삶이 전개된 것은 아니다. 끝까지 어장을 고집하며 바다를 벗 삼아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서천 유부도
서천 유부도

<참고도서 이재언/한국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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