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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피지 못한 꽃봉오리 ‘통영 사량도 옥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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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피지 못한 꽃봉오리 ‘통영 사량도 옥녀봉’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21.08.31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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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재미 더해주는 ‘섬' 스토리텔링②
통영 사량도 옥녀봉 등산로
통영 사량도 옥녀봉 등산로

지리망산은 국내 100대 명산 중 하나로, 모험과 낭만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경남 통영의 사량도 역시 등산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이 섬을 찾는 10명 중 8명은 산행을 하는 사람들일 정도다. 특히 가마봉과 옥녀봉 구간은 산행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통영팔경의 하나인 사량도 옥녀봉에는 애절한 전설이 전해진다. 아주 먼 옛날, 사량도 옥녀봉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부부가 어느날 옥녀라는 예쁜 여자 아기를 출산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어머니는 옥녀를 낳은 뒤 병으로 세상을 등졌고, 아버지마저 슬픔에 잠겨 몸져 눕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도 세상을 하직했다.

기구한 운명의 옥녀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 이웃에 홀로 살던 홀아비가 옥녀를 불쌍히 여겨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잘 보살폈다. 옥녀는 이 사람을 친아버지로 알고 성장했다.  

통영 사량대교
통영 사량대교

세월은 흘러 열여섯이 되자 옥녀는 어여쁜 처녀가 되었고, 그 미모가 아주 뛰어나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다. 이즈음 옥녀를 길렀던 의붓아버지는 마음이 동하여 옥녀에게 이상한 행동을 할 낌새를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옥녀는 그를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는데, 슬픔에 잠긴 옥녀는 이러한 위기를 벗어날 묘책을 생각했다. 

“아버지! 제가 간절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라는 대로 행하시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내일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상복을 입고 멍석을 뒤집어 쓴 채, 풀을 뜯는 시늉 을 하면서 송아지 울음소리를 내며 저 옥녀봉으로 네 발로 기어서 올라오십시오.”

미련한 의붓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눈물로 밤을 새운 옥녀는 다음날 새벽에 옥녀봉으로 올라갔다. 인적 없는 새벽녘에 옥녀봉에 앉아있는데, 상복을 입고 짐승의 모습을 한 의붓아버지가 벼랑을 기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옥녀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린 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열여섯 피지 못한 꽃봉오리 하나가 산산이 부서졌다.

사량도 옥녀봉 전설은 타락한 동물적 본능을 엄중히 경고하는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옥녀봉 밑에는 사철 붉은 이끼가 끼어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옥녀의 피라고들 한다. 이 전설은 대단히 치욕스럽고 부끄러우며 고통스러울 뿐이다. 

한편, 사량도에서는 2004년부터 옥녀봉 등반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정작 옥녀봉의 주인공인 옥녀는 뒷전이고, 등산이 주행사다. 사량도 주민들의 삶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옥녀봉 전설이 영영 사라지지 않기를 고대한다.

<참고도서 이재언/한국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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