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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기 황금물결 꿈 어린 ‘대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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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기 황금물결 꿈 어린 ‘대연평도’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20.08.21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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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이야기가 있는 섬...인적 드문 ‘인천의 언택트 힐링 섬’④
연평도 빠삐용 절벽바위
연평도 빠삐용 절벽바위

연평도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나누어진다. 대연평도 남쪽으로 약 5.2㎞ 지점에 소연평도가 있다. 이 섬은 조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고장이다. 1960년대 말까지 5~6월에 조기가 산란을 위해 오기에 어선에 샛노란 참조기 떼가 황금물결을 이뤘다.

어선들은 대규모 조기떼를 따라서 신안에서부터 대동강까지 올라갔고 그 이동에 따라 흑산도, 위도, 덕적도, 연평도 순으로 올라가면서 파시가 열렸다. 연평도 조기파시가 타 지역보다 번성한 이유는 이곳에 도착한 조기가 산란을 할 때 크기는 물론 알도 꽉 차서 최고의 상품으로 쳐 주었기 때문이다. 또 가장 큰 소비시장인 서울과 가까워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

대연평도 아이스크림 바위
대연평도 아이스크림 바위

파시 때가 되면 당시 일본, 대만과 전국 각지에서 연평도로 들어온 배가 3천여 척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조기를 쫓는 어부, 어부를 쫓는 색시’라는 말도 바로 이 때 나온 것이다. 1960년대에 가설극장에서 백남봉, 양석천 같은 코미디언과 만담가인 장소팔과 고춘자, 배뱅이굿의 일인자인 이용관도 와서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나면 가설극장 터에서 돈을 줍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술 취한 선원들이 구경을 왔다가 떨어뜨리고 간 것이다.

영원히 만선을 이룰 줄만 알았던 이 섬의 조기파시는 1960년대 말에 끝이 났다. 이 무렵 조기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든 데다 1969년 황해에 한랭전선이 형성되어 연평 어장의 수온이 낮았다. 회유하는 조기떼는 북상을 멈추고 남해상에 머물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유자망 어선들이 흑산도 근해에서 그물을 내리고 조기를 잡아 올렸다. 연평어장으로 올라갈 조기떼의 길이 영영 막혀버린 것이다.

조기역사관 / 사진-옹진군
조기역사관 / 사진-옹진군

조기풍어의 역사를 드러내듯 연평도에는 ‘조기 역사관’이 들어서 있다.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며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2001년에 건립된 곳이다. 이곳은 또 북녘 하늘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실향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빠삐용이 탈출한 절벽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빠삐용 절벽은 연평도의 자랑거리이다. 낙조 사진촬영대회가 열릴 만큼 여기서 보는 일몰 광경은 그야말로 여행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연평도
연평도 일몰 풍경 / 사진-웅진군

한편, 꽃게는 1990년부터 주력 산업이 되었다. 이제 연평도 하면 조기에서 꽃게로 변경될 정도로 꽃게 어획량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남북한이 대치하여 접근하지 못한 지역에서 중국 어민들이 어부지리를 하고 있다. 

연평도 꽃게따기
연평도 꽃게따기

 

<참고도서, 이재언 ‘한국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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