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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섬]역대 왕들의 유배지 ‘인천 교동도와 대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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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섬]역대 왕들의 유배지 ‘인천 교동도와 대청도’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20.02.17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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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⑬ 고립의 섬 ‘유배문화 꽃피우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교동도는 고려 중엽부터 조선 말기까지 유배지가 되었고, 지리적 위치 때문에 외세의 침범이 심한 관계로 역사의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어미섬 강화도와 부속섬 교동도는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지역으로 일각에서는 하나의 왕국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이다. 국난을 맞아 왕조 자체가 강화로 이전한 일이 있기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섬에서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을 위시하여 광해군,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이 갇혀 지내다가 세상을 달리했다.

광해군은 잠깐 유배됐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지만, 연산군은 12년 동안 왕좌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31세에 쫓겨나 여기서 64일 만에 실의에 빠진 채 살다가 숨졌다. 연산군이 기거했던 거처는 고구리 마을이라 하지만 아쉽게도 그 위치와 정확한 종적은 찾아 볼 길 없다. 

유배의 땅에서 이제는 분단의 상징 같은 섬이 되어 실향민들이 망향제를 올리고 있다. 유서 깊은 교동도는 경치가 아름답고농토가 많아서 많은 선비와 시인들이 찾아와 절경에 취했고, 인간 영욕의 무상함을 노래했다고 한다.

교동도는 북쪽으로 황해도와 가까이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한강 하류와 만난다. 무역항 벽란도로 가는 중국 송나라 배들이 바람과 안개, 물때를 기다리며 잠시 머물던 국제교역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 조선 인조 때에는 삼도수군통어영을 설치하였던 해상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편, 고려시대 대청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당시 원나라 황실 황태자까지도 유배를 왔다. 충렬왕 4년에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무신 김방경이 모반을 했다는 모함을 받아 이곳에 유배되었던 기록이 있고, 충렬왕 6년 원제(元帝)가 황태자 애아역(愛牙亦)을 대청도로 귀양 보낸 것으로 나타난다.

 

 

<사진-투어코리아 DB,  참고도서 이재언 ‘한국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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