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19:09 (금)
장성 필암서원은 어떤 곳?...문화관광해설사 찾으세요!
상태바
장성 필암서원은 어떤 곳?...문화관광해설사 찾으세요!
  • 유경훈 기자
  • 승인 2018.02.14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필암서원

[투어코리아] 설 연휴 전남 장성의 대표 역사 문화 관광지인 필암서원(筆巖書院.사적지 242호)을 방문한다면 문화관광해설사를 찾아보자.

이곳에는 설 연휴기간(15~18일)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해설을 요청하면 현장에서 바로 서원의 유래 등 세세한 내력을 안내 받을 수 있다. 단, 설날(16일)은 상주하지 않는다.

3월부터는 토요일과 공휴일에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필암서원 편액

필암서원은 왕에게서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으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높은 절의(節義)와 학문을 숭앙하기 위해 그의 문인들이 1590년(선조 23)에 세웠다.

필암서원은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세워졌다.

휴식처인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했다.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낸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 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당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돼 있다.

서원 이름, 필암(筆巖)은 하서의 고향인 맥동에 붓처럼 예리한 형상의 바위가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 

필암서원에 주벽으로 모셔진 하서는 고고한 절의와 맑고 깨끗한 인품을 지닌 도학자였다고 한다. 그에 대한 놀라운 일화가 전해오는데, 다섯 살 때 하서는 날 파 하나를 놓고 한 껍질 한 껍질 벗기면서 그 속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마지막 고갱이를 알아내고는 손을 놓았다. 이를 본 아버지가 쓸데없는 장난이라며 나무라자, 하서는 "생겨나오는 이치를 알아보고 싶어 그리 했습니다." 하고고 답했다 한다.

▲ 필암서원 전시관

하서는 22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24세에 퇴계 이황을 만나 교분을 맺었으며, 31세에는 문과에 합격했다. 34세에는 후일 인종(仁宗) 임금이 되는 세자의 시강(侍講)이 됐다. 그러나 36세 되던 해에 인종이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해 7월 갑자기 승하하자, 관직을 사양하고 세상과 일체 인연을 끊은 채, 학문을 수양하며 생의 후반을 보내게 된다.

▲ 필암서원 전시관

그러면서도 해마다 인종의 기일(忌日)인 7월 초하루에 산에 올라 북쪽을 향해 울었다고 한다. 정조는 후에 하서의 절의를 높게 평가해 하서를 모신 필암서원에 '경장각(敬藏閣)'이라고 쓴 편액을 하사했다. 

카카오플러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에디터 초이스
투어코리아 SNS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