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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속 고대 도시 ‘폼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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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속 고대 도시 ‘폼페이’
  • 글·사진 지태현 객원기자
  • 승인 2016.12.14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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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찬란했던 역사 박제된 시간 속에 머물다!
▲ 베수비오 화산이 보이는 폼페이 유적지

[투어코리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의 고대도시 폼페이(Pompeii). 최근 국내에서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나면서 자연 앞의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되새기면서 ‘폼페이 최후의 날’은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 ‘폼페이’는 풍요롭고 화려했으며 찬란한 문물을 꽃피웠던 곳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고 한 줌 재로 사라지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바로 79년 베수비오화산의 폭발로, 화산재로 뒤덮여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숱한 세월 잿더미에 묻혀있던 폼페이가 세상에 다시 그 존재를 드러낸 것은 1592년. 화산재로 뒤덮이던 순간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 ‘폼페이’는 2천여 년 전 고대 로마시대의 삶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역사문화의 보고(寶庫)’다.

한 순간 멸망한 ‘비운의 도시’는 이제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돼 전 세계인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폼페이와 폼페이를 한순간 사라지게 한 베수비오(VESUVIO) 화산으로 가봤다.

▲ 폼페이 유적지 내부에서 내다본 풍경

2천여 년 전 고대 로마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꼭 껴안은 채 죽음을 맞은 폼페이 연인, 화산을 피하려는 듯 망토로 얼굴을 가린 남자, 재난을 피하려 귀금속을 챙겨 도망가던 사람들. 어린 아이를 꼭 껴안은 엄마. 화산폭발로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비극의 도시 ‘폼페이’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화산으로 순식간에 멸망했지만 화산재 덕분에 2천여 년 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폼페이의 최후의 순간’은 수많은 예술인들의 영감을. 숱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런 호기심 때문일까. 폼페이를 테마로 한 무수한 예술작품과 영화가 등장했고, 끊임없이 폼페이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10월 고고학자들이 화산이 덮치기 전 폼페이의 모습을 3D 영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만큼 폼페이는 궁금증,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 엄마를 안고 있는 듯 캐스트

 

* 사철 서쿰베스비아나 타고 ‘폼페이’로 출발!

최후의 순간, 겁에 질린 이들의 표정과 몸짓, 참혹함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 ‘폼페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나러 2천여 년 전으로 떠난 시간여행. 그 여정은 나폴리 중앙역(Napoli Centrale stazione) 지하로 내려가 폼페이를 거쳐서 소렌토까지 가는 사철 서쿰베스비아나(Circumvesuviana)를 타면서 시작됐다.

객차는 약 50년 이상은 되었을 듯한 구식이었고 내부 구조 또한 빈티지가 철철 넘칠 뿐만 아니라 열차의 내벽 낙서 또한 그 내력을 설명해 주는 듯 지저분하고 혼란스럽게 보였다. 게다가 객실내의 승객들은 학생으로 보이는 현지인들과 대부분 서아시아인들과 인도인들이 특히 눈에 많이 뜨였는데 아프리카의 흑인들로 보이는 젊은 노무자들도 의외로 많았다. 열차는 오래된 객차라는 것을 소문이라도 내듯이 소란스럽게 덜컹 거리며 약 30분 정도 운행 후에 폼페이 역에 도착했다.

* 일일 워킹투어티켓 구입으로 본격적으로 탐방

아름다운 예술과 풍요로 가득 찼던 고대 로마제국 귀족들의 휴양지 ‘폼페이’를 만나기 위해 우선 폼페이 역과 바로 이어지는 매점에서 ‘일일 워킹투어티켓’을 구입했다. 역의 출입문을 나가 이미티켓을 구입하고 안내원이 오기를 기다리는 여러 명의 관광객들 무리에 섞여 안내원을 기다렸다.

잠시 후 다소 뚱뚱한 스타일의 키 작은 중년 여성 안내원이 티켓을 구입한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 는데 워킹 투어에 참여 인원은 약 20명 정도 되는 듯 했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 하고는 자신의 빨간 깃발을 놓치지 말고 따라와야 한다고 일러준다.

‘원형경기장’, ‘대극장’, 상하수도시설, 공중목욕탕 등 웅장한 시설을 갖춘 폼페이, 2천여 년 전 이런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지 기대감을 갖고 본격적인 폼페이 탐방에 나섰다.

▲ 폼페이 신전의 유적

*고대 로마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진한 감동!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폼페이 유적 투어의 시작은 유적지 입구인 ‘마라나 문’을 통과하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안내원은 특히 화려했을 듯한 고대 로마 시대의 사우나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우나탕의 벽면에 그려진 벽화가 흐릿하기는 하지만 ‘에로틱한 그림’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그림은 사실 나폴리 국립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NAzionale)에서 이미 본 듯했다.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에 있는 ‘비밀의 방(GabinettoSegreto)’에 전시해 놓은 ‘에로틱한 폼페이 유적전시물’에 비하면 선명하지 않았지만 박물관이 아닌 현장에서 보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이러한 유적들을 보자니 과거나 현재나 풍족함이 지나치면 방탕과 타락을 길로 들어서는 것은 변함없는 역사의 흐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폼페이 유적지의 시가지

사우나탕을 지나서 언덕길로 올라가자 잘 구획된 마을과 작은 도로가 나온다. 바닥은 당시에 깔아 놓은 단단한 돌들이 아직도 과거의 모양 그대로 반질반질 닳아 있었다.

주변 건물 또한 부서진 벽과 일부 흔적만 남아 있었지만 과거에 화려했던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의심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아직도 파괴된 건물 내에는 당시에 생활하며 쓰였던 항아리등 생활 도구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현장감은 그만이었다. 도로의 끝은 넓은 광장으로 이어 지는데, 그곳에는 과거에 신전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들이 당시의 영화를 대변해 주듯이 아직도 늠름하게 서있었다.

광장 너머로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화산을 바라보는 순간 폼페이라는 도시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는 베수비오 화산(Vesuvius Busvia)에 올라가 그 흔적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 최후의 순간 참혹함 고스란히 담긴 ‘캐스트’

신전의 돌기둥 그림자 아래서 잠시 쉬다가 근처에 있는 캐스트작업실로 발길을 옮겼다. 작업실에는 이미 발굴된 고대 로마 시대의 그릇들이 먼지와 함께 선반에 켜켜이 쌓여 있었으며 아직도 복원중인 캐스트(Cast)도 눈에 띠었다.

그 중에는 이미 복원되어 앉아있는 형태의 캐스트도 있었고 어머니를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의 어린아이 캐스트도 유리상자안에 전시돼 있었다.

▲ 발굴된 유물들과 케스트

캐스트란 과거에 화산의 분출로 인해 순식간에 화석화된 사람의 형상을 복원해 놓은 것인데 아직도 계속 복원하고 있는 듯 했지만 복원된 캐스트의 생동감 있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고대 폼페이라는 도시가 한 순간에 베수비오 화산의 분출로 인해 오랫동안 화산재에 묻혀있었고 그로 인하여 오늘날에 그 흔적을 우리가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다. 이곳저곳을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 중인 관광객의 숫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미 반으로 줄어들어 약 10여명만이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줄지어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넓은 폼페이 유적을 나름대로의 스케줄에 의하여 관람하고자 대오에서 이탈한 듯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관광객들과 함께 폼페이의 흔적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내 마음 속에는 멀리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에 자주 눈길이 갔다.

▲ 폼페이 시대에 사용하였던 생활 용품들

카카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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