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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독재의 함성, 혼돈의 과거를 뛰어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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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독재의 함성, 혼돈의 과거를 뛰어넘다
  • 문지연 기자
  • 승인 2014.08.19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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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나는 과도기의 도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②
▲루마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인 마누크 여인숙. 전통 음식과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투어코리아=문지연 기자] 여행지로서 루마니아는 그리 친숙한 나라는 아니다. 루마니아라는 나라 역시 동유럽의 어디쯤으로 떠올릴 뿐 정확한 위치를 짚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라 이름 네 글자를 떠올릴 때 스치는 기억이라면 체조 요정 코마네치, 독재자 차우셰스쿠 정도.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아마도 ‘드라큘라’쯤 될 것이다.

‘철의 장막’으로 둘러싸인 사회주의 국가에서 체제 붕괴 뒤 경제적 혼란을 딛고 도약 중인 루마니아. 그 중에서도 중심부인 수도 부쿠레슈티를 들여다봤다.

 

가장 오래된 호텔 ‘마누크 여인숙’
인민궁전이 차우셰스쿠 폭거의 결과물이라면 ‘혁명광장’은 시민의 염원이 폭발한 역사적인 장소다. 루마니아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이곳은 그래서 꼭 한 번 눈여겨 볼만한 곳이다.

혁명이 일던 당시인 1989년 12월. 차우셰스쿠는 반정부 시위자를 무차별 학살해 1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만들었고 이를 지켜 본 군중과 군부는 결국 차우셰스쿠에게 등을 돌린다. 21일 광장에서 연설을 하던 차우셰스쿠는 아수라장이 된 광장에서 도망을 치다 군인들에 체포돼 나흘 뒤인 25일, 아내와 함께 공개 총살형에 처해진다. 당시의 시위 장면은 루마니아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방송되기도 했다.

▲19세기 초에 지은 목조건물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인 마누크 여인숙. 과거 창녀와 상인 등이 머물렀던 장소다.

 

광장에는 25미터 높이의 혁명 기념비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그때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또 광장 주변 건물에는 지금도 당시의 참극을 말하는 총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혁명광장 근처에는 아테네 음악당과 옛 왕궁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쓰고 있는 국립미술관 등이 자리해 있다. 음악당은 여러 연주회가 열리며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웅장한 외관의 국립미술관은 혁명 당시 무너져 내린 건물을 개축한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파괴한 차우셰스쿠 폭거의 흔적은 거리 곳곳에 넘쳐난다. 오래된 것들을 밀어버린 장소에는 투박한 실용주의 건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딱딱하고 거친 건물들은 도시 미관을 고려하지 않은 정리 안 된 느낌이다.

도시 이곳저곳에는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가 흩어져 있고 타다 남은 재처럼 흔적만 간직한 ‘옛 것’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파괴된 옛 것의 흔적을 보는 일은 결코 달갑지가 않다.

가만 보니 명소는 물론이고 명소로 향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차우셰스쿠 흔적 밟기를 하는 모양새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옛 것 중에 차우셰스쿠가 손을 안 댄 곳보다 무차별로 파괴한 곳이 더욱 많으니.

▲구시가지

 

도처에 뿌리박힌 독재의 우울한 잔해는 마음을 뒤숭숭 하게 했으며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의 근현대사와 닮아 있어 가슴 한 편이 더욱 애잔하다.

부쿠레슈티는 이런 우울하고 아린, 애잔한 감성들이 종종 마음을 후벼 파는 동네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 뒤에는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친절한 현지인들과 밝은 청년들의 움직임이 도시를 더욱 활기차게 만든다.

부쿠레슈티 대학광장 뒤쪽으로 들어서면 이 같은 분위기를 더욱 깊게 느낄 수가 있다. 노천카페에 모여 앉은 이들 사이사이로 시종일관 활력과 웃음이 넘친다. 이곳은 차우셰스쿠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옛 모습이 남아 있다.

구시가 골목을 빠져나오면 오래된 마누크 여인숙이 보인다. 19세기 초에 지은 목조건물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다. 마누크 여인숙에는 과거 창녀와 상인 등이 머물렀는데 현재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로 손님을 맞고 있다. 루마니아 전통 음식과 공연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택한 음식은 이름부터 호기심을 유발한 ‘드라큘라 치킨’. ‘소름 돋게 매워서 드라큘라인가? 도대체 어떤 맛일까?’ 하지만 음식은 맵기는커녕 달달한 케첩 맛만 감돈다. 빨간 소스 때문에 이런이름이 붙었을지 모를 일이다.

▲마누크 여인숙에서 주문했던 '드라큘라 치킨'

 

‘드라큘라 백작’ 살던 옛 왕궁 터
마누크 여인숙 근처에는 옛 왕궁 터가 있다. B.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1897)의 모델로 알려진 15세기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 블라드체페슈 공이 머물던 곳이다. 왈라키아 공국은 1861년 몰도바와 통합해 루마니아를 이뤘다.

▲ 블라드 공이 왈라키아 공국의 왕도를 부쿠레슈티로 옮기면서 지은 옛 왕궁 터. 부쿠레슈티에 건설된 최초의 궁전으로, 발굴 작업을 통해 터키탕과 여러 유물들이 확인됐다.

 

드라큘라 백작으로 더 유명한 그의 이름 체페슈는 루마니아어로 꼬챙이란 뜻이다. 죄를 지은 사람을 꼬챙이로 잔인하게 죽인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 그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의 군대를 물리친 위인이다.

옛 왕궁 터는 유물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무너져 내린 건물 앞쪽으로는 블라드 공의 흉상이 서 있다. 그가 바로 이름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렸던 ‘드라큘라 백작’이란 것을 알고 나서인지 날카로운 눈매가 왠지 모르게 더욱 매섭게 느껴진다.

창백한 낯빛과 붉은 피. 영화 속에 묘사된 드라큘라 백작은 언제나 뒷덜미를 서늘하게 할 만큼 소름이 돋았다. ‘드라큘라 백작’의 흉상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어린 시절 기억의 습득 때문이리.

▲옛 왕궁 터 안에 자리한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인 블라드 공의 흉상.

 

이 왕궁은 블라드 공이 왈라키아 공국의 왕도를 부쿠레슈티로 옮기면서 지은 것으로 부쿠레슈티에 건설된 최초의 궁전이다. 1775년 알렉산드루 입실란티 왕이 왕궁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전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옛 왕궁 터에서는 그간 발굴 작업을 통해 터키 목욕탕, 배수관, 그리고 많은 유물들이 확인 되었다.

왕궁 터 옆에는 성 안토니 교회가 자리해 있다. 왕궁 부속 교회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왕들의 대관식이 열린 장소다. 내부에는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왕궁 부속 성 안토니오 교회.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왕들의 대관식이 열렸다.

 

파괴된 옛 것 그 속에 핀 실용주의
동유럽 배낭여행 중에 부쿠레슈티 행을 계획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았다. 정보의 부재. 널리고 널린 여행 책자 중에 루마니아, 그 중에서도 부쿠레슈티가 차지하는 부분은 많지가 않았다. 더욱이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경고 문구가 여행 시작 전부터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부쿠레슈티는 관광자원이 풍성하고 볼거리가 무궁무진한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잘 닦인 관광지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오랜 독재 정권 아래 무차별하게 파괴된 문화재의 흔적과 도시에 뿌리박힌 우울한 잿빛 풍경으로 기억되는 도시다. 그러나 과도기 적 혼돈 속에 핀 새로운 도약과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는 곳은 물론이다. 바로 이 점이 비슷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동유럽 몇 개의 나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부쿠레슈티 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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