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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고장’ 금산으로 떠나는 건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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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고장’ 금산으로 떠나는 건강여행
  • 유경훈 기자
  • 승인 2010.09.03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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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비경에 구석구석 애국충절 혼 서려

금산(錦山)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줄여 붙인 이름. 그만큼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서대산과 대둔산, 천태산 등 명산을 품고 있는 금산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와 풀조차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소담스럽고 조용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 우리민족의 굵직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도 하다. ‘하늘이 내린 명약’ 인삼도 지천에 널려 있어 요즘처럼 힘 빠지는 때에는 더위를 식히고, 힘도 추스를 여행지로 최고다.

금산 최고의 비경 적벽강 물길

적벽강(赤壁江)은 금산을 흐르는 금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적벽강은 개발의 폐해로부터 벗어나 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적벽강의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라도 경탄과 찬사를 쏟아낼

만큼 매혹적이다.

적벽강은 한 편의 드라마를 펼쳐 놓은 듯하다. 금산의 남단인 소이진(召爾津)에 이르러 갑자기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흐르다가 방우리를 지나며 S자 모양으로 휘돌며 곡류의 멋스러움을 선보인다. 다시 남동쪽으로 뻗어 가다가 다시 북서쪽으로 급히 진로를 바꾸며 둥근 타원을 그려낸다. 돌고 도는 인생의 이치처럼 적벽강은 휘돌고 에두르며 자연의 신비를 드러낸다.

충남의 최고봉 서대산

서대산(904m)은 충남 남동부의 금강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금산고원에 속해 있으며 노령산맥을 이루는 중심이다. 산세 또한 웅장하고 아름답다.

정상에 오르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반(岩盤)이 장관을 이룬다. 서대산은 또 충남 금산, 충북 옥천뿐 아니라 대전 일대까지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는 충남의 최고봉이다. 정상에서 눈을 돌리면 멀리 민주지산·덕유산·대둔산·계룡산의 모습이 들어온다.

서대산은 침식에 강한 석영반암(石英斑岩)계의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변지역보다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 협곡을 가로질러 높게 설치된 50m 길이의 구름다리 일대는 신선바위·벼슬바위 등 기암절벽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천년고찰 보석사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에 자리한 보석사(신라 헌강왕 때 조구대사가 창건)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명성황후가 중창해 원당으로 삼았고,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거느렸다.

한창 전성기 때는 500여명의 승려와 3,000여명의 신도가 북적댔고, 임진왜란 때 의승장이었던 영규 대사가 이 절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사찰로 들어서기 전 전나무숲길과 수령 1,100년의 은행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200여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한석규가 등장하는 TV CF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보석사 앞에 자리 잡고 있는 1,100살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호)는 높이 40m, 둘레 10.4m에 달하는 데 마을이나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큰소리로 울어 재난을 예비토록 했다고 전해진다.

권율장군 기개(氣槪) 살아 숨쉬는 대둔산

대둔산

(大芚山)은 2개 도와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충남 금산군 진산면, 논산시 벌곡면, 전북 완주군 운주면이 경계를 이루는 38.1km²의 도립공원이다. 높이 878m의 마천대를 중심으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 절경을 이룬다.

기암괴석은 곳곳에 이야기가 전한다. 금강구름다리 부근 동심바위는 신라 문무왕 때 국사였던 원효대사가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 바위를 찾았다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한다. 금강통문, 장군바위, 용문골, 장군봉, 칠성봉 등도 아련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옥계동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태고사와 임진년 7월 권율장군이 1500여명의 군사로 2만여 왜군을 크게 무찌른 배티재고개, 그리고 이곳에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이치대첩비가 위치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태를 품고 있는 만인산

높이 537m인 만인산은 만 길이나 높고 깊은 산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산으로 땅이 두텁고 물은 깊으며 산봉우리 모양이 꼭 연꽃을 닮았다 하여 명당자리로 보고 태조 이성계의 태를 모셨다고 한다. 현재 만인산은 대전쪽으로 시민 휴게소가 들어서 있고 산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 가벼운 산행을 하기에 적당하다. 아울러 금산군과 대전시를 연결하는 터널을 품고 있어 대전과 금산의 관문역할을 하는 산이기도 하다.

아쉬움이 녹아드는 천혜의 요새(要塞) 월영산

월영산은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와 충북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 사이 금강줄기를 끼고 솟은 산으로 산 정상에 서면 금산군내를 흐르는 25km 길이의 금강줄기 대부분을 감상할

수 있다. 월영산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휘감아 도는 금강줄기와 맞닿은 산록부는 예부터 험준해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특히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이 청주 싸움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뒤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으려고 금산에 왔을 때 영규대사가 월영산의 바위 낭떠러지에 돌을 쌓아 놓고 기다리다 왜군이 지날 때 이를 떨어뜨려 막자고 건의했는데 조헌선생은 양반답지 못한 싸움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 뒤 왜군은 이 요지를 무사통과하여 금산벌로 향했고 수적으로 열세에 있던 조헌선생과 그 휘하 700여 의병들은 왜군을 맞아 싸웠으나 모두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그 때 전사한 호국열사들의 넋을 기린 곳이 현재 금산군 금성면의 칠백의총이다.


6·25의 비극 터 백암산

‘600고지’로 더 잘 알려진 백암산은 지리적 특성으로 전쟁 말기 퇴로가 차단된 빨치산의 중요 거점이었다. 당시 군경의 합동작전으로 2000명 이상의 빨치산이 사살되었고 전투에 참가했던 경찰과 군인, 민간인등 200명 이상이 희생되어 모두 2563명의 생명이 이 산에서 잠들었다. 당시 치열히 싸운 배티재 고갯마루 서암산 아래에 육백고지전승탑, 육백고지 참전공적비, 충혼비등이 세워져 있다.

배티재는 서부 평야지대로 넘어가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육백고지전승탑 뒤의 산봉우리 둘레에는 백제 때 쌓은 백령성터가 아직 남아있다.

호국영령의 성지 칠백의 총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한 중봉 조헌(重峰 趙憲)과 영규대사(靈圭大師)를 비롯한 칠백의사(七白義士)의 무덤이다.

1603년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를 세우고 1647년 사당을 건립해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시고, 1663년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눈벌싸움에서 순절한 제봉 고경명과 횡당촌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邊應井)의 막좌 및 사졸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자연의 절경 12폭포(12瀑布)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에서 동남쪽으로 2㎞ 시냇물따라 골짜기로 들어가면 무성한 숲과 층암절벽 사이를 누비며 내려 쏟아지는 크고 작은 12개의 폭포가 있다. 이 곳이 유명한 12폭포로 그 이름도 폭포의 수를 따라 지은 것이다. 가장 큰 폭포는 높이가 20m나 되며 물이 맑아서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웅장한 모습과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물소리와 옥이 부서지는 물방울은 대자연의 절경이며 조물주의 위대한 창조품이라 가히 말할 수 있다.


(참 좋은 관광정보 투어코리아 2010년 09월호, Tou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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