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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조차 역사가 흐르고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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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조차 역사가 흐르고②
  • 오재랑 기자
  • 승인 2013.11.14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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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가 정겨운 곳 철원(鐵原)
▲삼부연폭포

[투어코리아=오재랑 기자] 남한의 최북단이면서 곡창지대가 있는 곳으로 한국전쟁 때 남북한이 서로 빼앗기 위해 숱한 격전을 치른 곳 '철원'. 한국전쟁 3년 동안 철원 하늘을 그 어느 것보다 많이 날아다닌 게 총탄과 포탄이다. 이런 아픈 역사의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 한국 전쟁 당시의 잔혹한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철원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아픔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노동당사와 제2땅굴, 월정리역 등 관광지를 돌아봤다.

시인 묵객들의 단골 방문지 삼부연폭포
삼부연폭포(三釜淵瀑布)는 물이 떨어지는 세 군데의 모양이 가마솥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 폭포는 명성산의 깊은 계곡에서 발원해 사계절 마르지 않고 20m 높이의 절벽 사이로 티 없이 맑은 물을 쏟아낸다. 주변 경관 또한 수려하다보니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다고 한다.

동서고금(東西古今) 어디를 가나 명승지에는 다 그에 어울리는 전설 한 두개씩은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삼부연폭포에도 귀를 즐겁게 할 전설이 전하고 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태봉국 궁예왕이 철원의 풍천원에 도읍을 정할 당시 그곳에는 도(道)를 닦던 4마리(두 쌍)의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이중 3마리만 폭포의 기암을 뚫고 용으로 승천했다고 한다.

그 때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면서 생긴 세 곳의 구멍에 물이 고인 모습이 가마솥 모양과 같다고 해서 ‘삼부연’이라 부르게 됐고, 그 후 마을 이름도 용화동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 때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가끔 심술을 부려 비가 내리는 것을 막아 이 지역이 가뭄을 겪게 만든다고 한다. 때문에 가뭄이 심할 땐 삼부연 폭포 밑에 제물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내고 대풍을 기원하기도 한단다.


철원군민 고혈로 지어진 노동당사
3층 벽돌콘크리트 건물인 노동당사는 처음 봤는데도 왠지 몇 번은 본 것인 냥 낯이 익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통일을 염원하는 각종 행사의 단골로 등장하던 한 배경이 바로 노동당사였다.

▲노동당사

노동당사 건물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다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민족의 아픔을 소리 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미군기의 무차별적인 폭격을 맞아 뼈대만 앙상히 서있고, 그 마저도 외벽은 총탄에 맞아 성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노동당사는 애초부터 생겨나지 말았어야할 건물이다. 이 건물은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을 통제할 목적으로 세웠는데, 건물을 지을 때 성금이란 구실로 1개 리(쐮)당 백미 200가 마씩 착취하고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시켰다고 한다. 말하자면 철원과 포천 일대 양민들의 고혈을 죄어 짜 완성한 건물이다.

건물이 완공된 후에는 철원, 김화,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 인사들을 체포, 고문,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 만행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끔찍했던지 이곳에 한 번 끌려간 사람들은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서 나왔다 한다.

그 참상은 한국군의 노동당사 점령으로 낱낱이 드러났는데, 건물 뒤 방공호에서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많은 실탄과 철사줄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비록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노동당사에서는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원통한 역사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아픔을 뒤로하고 마음을 진정시킬 겸해서 철새 낙원을 들려 월정리 역사로 넘어가기로 했다.

▲월정리 철원 두루미관

철새들의 낙원 도래지
철원 민통선 지역은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로 찬바람이 불면 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캐나다 두루미도 찾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곤 하는 곳이다.


그런데 민통선을 간 날은 너무 일러서인지, 아님 찬바람이 덜 불어서인지 철새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해설사는 11월 가까이 되면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데, 맑은 하늘은 우아한 날갯짓으로 무리 짓는 재두루미들은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고 소개해 줬다.

날씨가 좀더 추워지면 다시 찾아와 겨울 철새들을 관찰하기로 하고 다음 여행지인 월정리 역으로 차를 급히 몰았다.

▲월정리역

철마는 달리고 싶다 ‘월정리역’
‘月井里’를 해석하면 ‘달의 우물’이다.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생각해 낼 수가 있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이름에 얽혀 있는 역사는 영 아름답지가 못하다. 아니 끔찍하고 비통하기 이를 데 없다. 월정리 역사는 아직도 그 아픔을 그대로 보듬고 있었다.

월정리 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향하던 기차가 잠시 쉬어 가는 간이역이다. 그런데 잠시 쉬어야할 역에 반세기가 넘도록 기차 소리가 들리질 않고 있다. 그곳에는 미군기의 폭격을 맞은 기차가 뼈대만 간신히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열차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그 열차의 한을 풀어줄 이 과연 누군가? 이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답할 길이 없어 무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는데 맞은편에 두루미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으로 가 보니 민통선에 서식하는 많은 야생 동물들이 박제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물들은 살아있는 듯 보였지만 역시 말이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월정리역

남침 야욕의 현장 ‘제2땅굴’
마음이 뒤숭숭한 상태에서 도착한 곳은 근동면 광삼리에 있는 제2땅굴이다. 제2땅굴은 북한이 기습 남침하기 위해 파내려온 것으로 1975년 군사분계선 남방 800m 지점에서 발견됐다.

제2 땅굴은 우리군 초병이 지하에서 울리는 폭음을 듣고 1년 4개월간의 굴착 작업 끝에 찾아낸 것이다. 제2땅굴은 지하 50~160m의 견고한 화강암층을 뚫고 군사분계선 남쪽 1.1km까지 파내려 온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발견된 땅굴중 규모가 가장 크다는데, 한 시간에 무장 병력 약 3만 명의 침투가 가능한 규모란다.

▲제2땅굴

참고로 김일성은 1968년 “적 후방에 제2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땅굴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서 “땅굴 하나가 핵무기 10개보다 효과가 있다”고 말한바 있다고 한다.

철원 제2 땅굴은 김일성이 말한 내용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생각만해도 간담이 다 서늘해진다.

입구에는 땅굴 탐지 과정에서 지뢰와 부비트랩으로 목숨을 잃은 우리 군인 8명을 기리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해설사와 함께 땅굴 안으로 땅굴 안으로 걸어들어 가는 기분이 묘했다. 10여 분쯤 걸어 들어가자 자그마한 작은 우물이 나타났다. 북한군이 땅굴을 팔 때 식수로 쓰던 우물이라는 데, 우리 측이 확보한 후 통일 염원 우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이 땅굴은 철원군에서 운영하는 안보 관광 코스 중 하나로,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철원평화전망대
▲모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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