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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국보’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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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국보’ 지정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2.12.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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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금동사리외호(왼) 및 금제 사리내호(오).사진=문화재청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금동사리외호(왼) 및 금제 사리내호(오).사진=문화재청

백제시대 공예의 정수(精髓)로 알려진‘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가 국보로 지정됐다.

27일 익산시에 따르면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이날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 고시했다.

현재 국립익산박물관 대표유물로 전시 중인‘사리장엄’은 2009년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사업 중 심주석(心柱石, 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舍利孔, 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에서 나온 9,900여 점의 유물로 2018년 보물로 지정된 지 14년 만에 국보로 승격됐다.

이번에 지정된 국보는 639년(백제 무왕 40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 사리봉영기(金製 舍利奉迎記)와 함께 금동사리외호(金銅舍利外壺) 및 금제 사리내호(金製 舍利內壺),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靑銅合) 6점 등 총 9점이다.

사리장엄구는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로 함께 봉안되는 모든 공양물(供養物) 금제 사리봉영기에는 백제 왕후[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가 재물을 시주해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己亥年, 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는 삼국유사(三國遺事)’무왕조에 전하는 미륵사 창건설화를 구체화해 미륵사지 석탑의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 사리장엄구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사리내·외호는 그릇 표면의 연판문과 당초문 등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었고,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닫는 독창적인 구조로 기형(器形)의 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한껏 돋보인다. 

6점의 청동합 중 하나에는 ‘상부달솔목근(上卩達率目近)’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시주자의 신분과 공양품의 품목까지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 크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청동합. 사진=문화재청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청동합. 사진=문화재청

각종 공양물 넣어 봉안된 청동합들은 우리나라 유기(鍮器) 제작 역사의 기원을 밝혀 줄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639년(백제 무왕 40년)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더욱이 당대 최고급 재료와 최고의 기술력이 응집돼 탁월한 예술품으로 승화되어 한국공예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물로서 그 위상이 높다.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증명해주는 한편 동아시아 사리공예품의 대외교류를 밝혀 주는 자료로서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커 국보로 지정해 영구히 보존되어야 할 것으로 평가됐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이번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 국보 승격으로 백제왕도 익산의 위상이 재조명되고 있다”며, “잘 보존해 후대에 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익산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을 기반으로 국립익산박물관과 백제왕궁박물관, 내후년에 개관하는 세계유산탐방거점센터 등 금마 · 왕궁 일원에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활용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체류형 역사문화관광지로 발전시켜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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