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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결혼·근친혼·왕가계승전쟁...흥미진진 ‘합스부르크’家 이야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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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결혼·근친혼·왕가계승전쟁...흥미진진 ‘합스부르크’家 이야기 속으로!
  • 조성란 기자
  • 승인 2022.11.04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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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찬란했던 ‘합스부르크’제국의 600년(1273~1918년) 역사와 문화,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서울에서 예술작품으로 만나보자.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이 내년 3월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려 관람객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등 96점의 작품들을 통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흥망성쇄, 정략결혼, 근친혼, 유전병, 왕가 계승 전쟁과 왕가의 가족사 등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화를 보고 있는 관람객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화를 보고 있는 관람객

# 제국 사라졌어도 ‘합스부르크 예술작품’은 영원히 빛난다!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왕정이 몰락한 카를 1세의 1918년까지 약 600년간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을 정도로 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던 왕가의 역사는 유럽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양승미 학예사는 “600년간 찬란하게 번영했던 합스부르크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은 남아 합스부르크 이름을 아직도 빛내주고 있다”며 “‘예술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백년간 지속적으로 예술품들을 수집해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15세기 막시밀리안 1세부터 20세기 초까지 합스부르크가 600년에 걸쳐 수집한 예술품들을 관람하며 ‘예술이 가진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와 예술을 함께 살펴보는 재미 가득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총 96점. 모두 빈미술사박물관에서 가져온 이 작품들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15~ 20세기 수집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거장들의 걸작들이다.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된다. ▲들어가며 ‘더 멀리, 합스부르크가의 비상’ ▲1부 ‘황제의 취향을 담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 ▲2부 ‘최초의 박물관을 꾸미다, 티롤의 암브라스 성’ ▲3부 ‘매혹의 명화를 모으다, 예술의 도시 빈’ ▲4부 ‘대중에게 선보이다, 궁전을 박물관으로’ ▲5부 ‘걸작을 집대성하다, 빈미술사박물관’ 등이다.  

전시실 곳곳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와 관람객의 오감을 자극하며 몰입도를 높여준다. 

요한 카를 아우어바흐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요한 카를 아우어바흐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결혼하라”..합스부르크, 결혼동맹으로 유럽 패권 장악 

전시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던 15세기의 막시밀리안 1세로 시작된다.  

10세기 스위스 북부 백작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오스트리아로 진출한다. 이후 150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오른 막시밀리안 1세는 ‘결혼동맹’으로 적극적으로 세 확장에 나선다. “다른 이들은 전쟁하게 둬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라는 시구가 유명했을 정도다.  

우선 본인이 유럽 최고의 부를 지닌 상속녀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 돈과 군사력을 확보하며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차지했다.

아들·딸을 스페인 왕실과 결혼시켜 스페인 왕국과 식민지를 손에 넣었다. 손자·손녀를 보헤미아 왕실과 결혼시켜 동유럽까지 거머쥔다.

손자인 카를 5세 때 이르러 중유럽, 서유럽, 남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 제도의 카스티야 식민지까지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게 된다.

‘더 멀리’라는 좌우명을 가진 가문답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룬 것이다. 막시밀리안 1세 초상화와 함께 마상 시합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세로 홈 장식 갑옷’, ‘막시밀리안 1세 갑옷’,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날이 휘어진 길 칼 ‘사브르’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왼쪽부터) 야자열매 주전자,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세로 홈 장식 갑옷, 십자가 모양 해시계, 누금 장식 바구니
왼쪽부터) 야자열매 주전자,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세로 홈 장식 갑옷, 십자가 모양 해시계, 누금 장식 바구니

# 황제의 취향? 정치 대신 예술 수집에 진심

종교개혁으로 신·구교 갈등이 심했던 16세기. 정치적으로 무능했지만 예술적 안목이 탁월했던 루돌프 2세. 그는 프라하로 수도를 옮기고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하고, 예술품을 활발하게 수집하며 프라하를 보헤미아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십자가 모양 해시계>, <누금 장식 바구니> 등 다양한 공예작품들이 ‘예술의 방’에 전시되는데, 그의 수집품들은 현재 비엔나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의 기초가 됐다. 특히 그가 남긴 문화유산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예술품 수집에 진심이었던 페르디난트 2세 대공. 그는 티롤의 암브라스 성에 수집품들을 진열하기 위한 전용 건물을 짓고, 진열장 설계와 전시품 배치까지 직접 결정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6세기 유럽에 전해진 희귀한 소재, 야자열매로 제작한 공예품 2점을 만나볼 수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 명화로 만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왕가의 삶  

이번 전시에서는 빈미술사박물관 회화관의 명성을 높인 명화도 만날 수 있다. 왕가 사람들의 삶과 함께 작품을 보면 재미는 배가 된다.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천사같은 공주의 모습이 시선을 끄는데, 이런 예쁜 모습의 공주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략결혼과 근친혼, 유전병의 비극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합스부르크家가 결혼동맹으로 전쟁을 피하고, 상대국에서 후계자가 없어져 운 좋게 한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했고, 이를 위해 수백년간 막장 근친혼을 이어오면서 유전병에 시달렸다. 

마르가리타 공주의 부모도 삼촌-조카간 여동생의 딸과 결혼했는 데, 공주 역시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와 결혼했다.  

지금으로선 말도 안되는 막장 관계지만, 당시 합스부르크가 왕가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공주는 유전병의 영향인지 21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이번 작품은 11살 연상의 정혼자(삼촌)에게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그린 초상화 중 5살 때 모습을 그린 것이다.  

비제 르브룅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비제 르브룅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 딸도 왕위 잇게 해줘!...9년 간의 왕위 계승 전쟁 벌여 

이번 전시에서는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의 시대도 살펴볼 수 있다. 아들이 없던 카를 6세는 합스부르크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해 여자도 왕위를 이을 수 있도록 국사조칙을 마련했다.

장녀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있는 근거는 마련한 것.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합스부르크와 결혼으로 얽힌 수많은 유럽 왕실도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합스부르크가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결국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9년간의 치열한 왕위 계승 전쟁을 벌이고 난 뒤 여왕에 오르게 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가 된 것이다. 

또 테레지아는 16명의 아들, 딸을 낳아 가문을 위해 아이들을 전 유럽으로 시집보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장모’이자 ‘유럽의 장모’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딸 중 한 명인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만나볼 수 있다. 

요제프 호라체크의 ‘엘리자베트 황후’
요제프 호라체크의 ‘엘리자베트 황후’

# “너 말고 네 동생이 좋아”..황제가 한 눈에 반해 언니 대신 황후로! 

넷플릭스 ‘황후 엘리자베트’로 알려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시시)’의 초상화 <엘리자베트 황후>와 남편 <프란츠 요제프 1세> 초상화도 전시돼 슬프고도 비극적인 19세기 말 황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엘리자베트의 언니인 헬레네가 황후가 될 예정이었지만, 프란츠 요제프가 상견례 자리에서 엘리자베트에 한 눈에 반해 언니 대신 동생을 황후에 앉힌다. 로맨틱한 결혼생활이 이어질 것 같지만, 자유분방한 성격의 엘리자베트는 엄격한 황가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어머니와의 고부갈등까지 겪는다. 궁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고, 아들이 자살하자 그 충격으로 해외로 떠돌다 제네바 여행 중 암살당한다. 

‘아름다운 황후’로 사랑받았던 엘리자베트는 평생 19~20인치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암살 당시에도 코르셋을 너무 꽉 조여 자신이 찔린 줄도 몰랐다고. 

엘리자베트가 황후가 된 이후 공교롭게도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 ‘황실에 죽음을 데리고 왔다’라는 말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1916년 프란츠 요제프 사망 이후 2년 뒤 1918년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실이 몰락하면서 번영했던 합스부르크家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에게 선물한 ‘투구와 갑옷’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에게 선물한 ‘투구와 갑옷’

#합스부르크 예술 수집품에 조선시대 ‘투구와 갑옷’?

전시의 마지막, 합스부르크가가 수집한 예술 작품에 갑자기 조선시대 ‘투구와 갑옷’이 등장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투구와 갑옷은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가 수교를 맺은 것을 기념해 고종이 당시 선물한 것이다.  

이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해로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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