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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단정한 산사의 멋 ‘안동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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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단정한 산사의 멋 ‘안동 봉정사’
  • 유경훈 기자
  • 승인 2021.01.13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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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입구
봉정사 입구

경북 안동시 서후면 (제천 천둥산과 혼동 말기를) 천등산(天燈山, 576m) 숲길을 따라 300여 미터 오르면 통일신라의 천년고찰 봉정사(鳳停寺)와 만난다. 11월 초 가을이 멋지게 익어갈 즈음 고찰 봉정사를 찾아가는 천등산 숲길은 가을이 한발 물러나 단풍의 화려함은 덜했지만, 바람에 쏟아지는 오색 낙엽비로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신비로운 전설을 만나러 가는 길

봉정사 가는 길 초입 왼쪽으로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는 계곡의 바위 위에 아담한 정자(亭子)가 보이는데 명옥대'(鳴玉臺.문화재 자료 제174호)이다. 조선 성리학의 큰 학맥을 이룬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이 10대 때 잠시 봉정사에 머물면서 공부를 하다가 놀곤 했다는 곳이란다.

명옥대의 원래 이름은 ‘물 떨어지는 곳'이라는 뜻의 '낙수대'(落水臺) 였는데 이름이 너무 밋밋하다고 해서 이황이 오나라 사람인 육사형의 시(詩) '솟구쳐 나는 샘이 명옥을 씻어내리네'(飛泉漱鳴玉)에서 글귀를 따 ’명옥대‘라 고쳤다고 한다. 계곡 큰 바위에는 지금도 이황이 새긴 친필 ‘명옥대'가 남아있다.

봉정사 명옥대
봉정사 명옥대

명옥대를 지나 아름드리 소나무 터널을 통과하면 봉정사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 ’일주문“(一柱門)과 만난다.

일주문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찰의 첫 출입구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어 일주(一柱)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날아갈 듯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문을 일주로 지은 것은 모든 진리가 하나임을 나타낸 것이다. 일주문 기둥에 더러 글을 써넣기도 하는데 주련(柱聯)이라고 한다.

봉정사 표석
봉정사 표석

깨달음을 얻는 소중한 공간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봉정사는 봉황(鳳)이 내려앉은(停) 곳에 세워졌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전설의 내용은 소개하면 대략 이렇다.

봉정사 일주문
봉정사 일주문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능인대덕이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道)를 닦던 중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낭군님의 지고한 덕을 사모해 찾아왔다’며 유혹했다. 이에 능인대덕이 여인의 유혹을 뿌리치며 꾸짖자 여인은 ‘옥황상제의 명으로 당신의 뜻을 시험했다’고 하며 하늘의 등불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능인대덕은 그 등불의 도움을 받아 더욱 수행에 매진해 득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에 의해 능인 대덕이 도를 닥던 대망산은 하늘(天)에서 내려온 등불(燈)이라는 뜻의 천등산으로, 바위굴은 천등 굴로 바꿔 불리게 됐다.

그리고 훗날 ‘능인대덕이 수련을 마치고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날려 봉황이 머문 곳에 절을 지어 봉정사(鳳停寺)라 이름 지었다 한다.

봉정사 영산암만세루
봉정사

◆ 만세루(덕휘루)

봉정사는 화엄 사상이 중심이 된 사찰이다.

층층 계단을 올라 만세루(유형문화재 제325호)를 통과하면 본당이 나오는데, 만세루를 통과하는 것은 사바세계 (娑婆世界)를 떠나 부처의 세계에 귀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세루의 누문(樓閣:사방이 탁 트이게 높이 지은 다락집)도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이층구조인데 아래층은 통로, 위층은 목어, 법고, 운판 등 불교의 사물(四物)이 걸려 있고 전망도 훌륭하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법고(북)은 가축이나 짐승을,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목어는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하고, 운판(구름 모양의 얇은 청동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들,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한다고 한다. 목어가 변형된 것이 목탁이란다.

◆대웅전

봉정사 대웅전(보물 제55호)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축물로, (해설사는) 고려 말, 조선 초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한옥의 멋스러움을 잘 보여준다.

건축양식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기둥과 기둥을 이어 주는 평방이나 창방 위에 공포를 두는 다포 방식을 채택했다.

대웅전 바깥 처마는 오래된 단청이 다 벗겨져 나무가 그대로 드러남에도 곡선 예술이 그대로 살아 있어 목조건물의 아름다움에 느껴볼 수 있다. 내부 단청 또한 너무 오래돼 색이 바래어 묘한 색감을 나타내지만, 고려시대 기법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제311호)로 지정돼 보전하고 있다.

◆ 극락전

극락전(국보 제15호)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 목조건축물로 고려시대에 지어졌다.

1972년 건물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던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옥개(屋蓋)를 크게 수리하고, 조선 인조 3년(1625)에 중수(重修)했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건물을 조영한 시기는 그보다 한참 앞설 것으로 추측된다.

극락전 처마
극락전 처마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한 후 대략 100∼150년이 지나야 옥개를 크게 수리하므로 약 12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청해 볼 수 있다. 이를 미루어 극락전은 1376년에 중수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앞선 건축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 중간이 불룩한 배흘림 기둥, 지붕 양면으로 경사를 짓는 맞배지붕, 지붕 무게를 분산시키는 짜임새를 기둥 위에만 만든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고려시대 지어졌지만, 삼국시대의 건축양식을 따른 점이 특징이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전각의 가운데에 이동식 불단을 설치해 그 위에 봉안하고 있고, 좌우 협시보살은 모셔져 있지 않다.

◆삼층석탑

극락전 앞쪽에서 볼 수 있는 삼층석탑(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82호)은 상하기단위에 3층 탑신부를 올린 것으로, 건립 연대는 극락전과 같을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적으론 고려 중엽 석탑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탑 기단부는 지대석 위해 하대중석을 올렸고, 중석에는 우주의 2개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하대 갑석 위 상대중석에는 우주가 있고 상대 갑석의 상면에 2중의 탑신 받침이 보인다.

석탑 꼭대기는 훼손돼 장식 일부만 남아있다.

봉정사 극락전 석탑
봉정사 극락전 앞 삼층석탑

◆고금당

극락전 왼쪽에 자리한 고금당(보물 제449호)은 조선 초기(1616년)에 중수한 건물(정면 3칸 측면 2칸)로, 규모에 비교해 (맞배)지붕이 크고 처마가 깊어 마치 사람이 ‘큰 갓을 쓴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고금당은 이름 그대로 옛 ‘금당’이란 인데, 이 이름은 전당 안을 금색으로 칠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금색의 본존불을 안치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금당’은 대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을 말하는데, 사찰의 모든 건물이 금당을 기준으로 배치된다. 이로 미루어 고금당은 극락전이나 대웅전이 들어서기 전인 봉정사 초창기의 수도 암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정사 영산암 가는 계단길
봉정사 영산암 가는 계단길

◆영산암

봉정사는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데, 그 배경은 대게가 부속 암자인 영산암(민속자료 제126호)이다.

천만 배우 송강호와 박해일이 주연한 영화 ‘나랏말싸미(2019)’에도 등장하는 데 신미스님(박해일 분)이 영산암 마루에서 한글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승’, MBC드라마 ‘직지’ 등도 이곳을 배경으로 여화 스토리가 전개됐다.

봉정상 영산암
봉정사 영산암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영산암이 나온다. 영산암 문루에는 '우화루(雨花樓)‘라 씌어진 현판이 걸려 있다. ‘우화(雨花)’라는 이름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득도한 뒤 법화경을 처음 설법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우화루라는 현판을 달 수 있는 곳은 높은 경지의 고승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우화루의 통로는 높이가 낮. 때문에 키가 크거나, 지체가 높은 사람들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가 없다. 부처님 앞에선 누구나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봉정상 영산암
봉정사 영산암

우화루 통로를 지나 영산암에 들어서면 주불전인 응진전과 삼성각, 영화실과 관심당과 송암당을 만난다.

앞뜰에는 커다란 바위와 그 바위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 한 그루가 법당, 요사채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응진전을 돌아볼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벽화다.

호랑이와 까치 그림인 호작도, 불사약을 찧고 있는 토끼 한 쌍, 영지를 물고 있는 사슴, 갈고리에 코를 꿰인 용이 어부와 한바탕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 등 종교적 분위기가 아니라 누구나 친근하게 감상하고 흥미로워할 만하다.

봉정상 영산암
봉정사 영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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