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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로 마실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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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로 마실을 떠나다
  • 유경훈 기자
  • 승인 2021.01.1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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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하회마을

낙동강 물이 휘돌아 ‘S’ 모양으로 흘러간다는 안동 하회(河回)마을. 600년간 이어온 풍산 류씨 동성촌락 명문대가로,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마을 안쪽에 와가(瓦家: 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돼 있어, 골목을 걷다 보면 조선시대 속으로 마실 나온 느낌이다.

하회마을
하회마을

하회마을 역사를 더듬다!

매표소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이 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600년 넘게 이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풍산 류씨에 대한 존경심도 생겨났다.

하회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류운룡과 성룡 형제다.

하회마을 역사문화 표지석
하회마을 역사문화 표지석

류운룡(1539~1601)은 류성룡의 형으로 유학자이며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부용대 백사장 앞 소나무 숲, ‘만송정’(천연기념물 제473호)이 그의 작품이다. 조선 선조 때 마을 입지환경을 개선하고 풍경을 좋게 하고자 조성한 숲으로 당시 소나무를 1만 그루 심었다고 한다. 현재 만송정은 당시에 심은 소나무는 없고, 100여 년 전 다시 심은 것들이라는 데, 하회마을의 휴식·문화공간이면서 부용대 절벽, 낙동강, 백사장 등과 어우러져 수려한 절경을 빚어낸다.

하회마을
하회마을

그의 동생 류성룡(1542~1607)은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수행하며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명재상이며, 풍산 류씨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 받들어진다

그런데 풍산 류씨의 고장은 원래 풍산 상리였다고 한다. 그러다 가문의 번성을 위해 보다 좋은 터를 물색하던 중 류종혜(풍산류씨는 시조 류절(柳節)의 6세손) 공이 화산(花山.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마을 동쪽 산. 해발 271m))에 올라가 이곳을 발견하고는 3년 동안 인근 마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活人-사람의 목숨을 구(救)하여 살림)  생활하던 끝에 부락을 일궜다고 한다. 그 뒤로 가문의 광영이 더욱 빛났다고 하니 후손들로선 조상님 은덕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하회마을
하회마을

과거 시대로 생활 여행

하회마을이 마치 민속촌(민속이나 전통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 같지만, 풍산 류씨의 여러 가문이 생활하고 있는 자연마을이다. 전기밥솥과 냉장고를 사용하고, 외출 시에 승용차를 타고 나간다. 하회마을을 여행할 때 조신해야할 이유다.

골목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월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지는 문화유산과 많이 맞닥뜨린다.

하회탈(국보 제121호)과 병산탈, 서애 류성룡 선생의 임진왜란 기록서인 징비록(국보 132호)은 국보로 지정됐다. 류성룡 선생의 종가 문적(보물 160호)와 종가 유물(보물 460호)을 비롯해 양진당(보물 제306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북촌댁(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 옥연정사(국가민속문화재 제88호). 겸암정사(국가민속문화재 제89호) 등 고가(古家)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조선시대 발전된 가옥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제69호)이고, 하회마을이 통째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것은 36년전 일이다.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은 류성룡 선생의 체취가 남아 있는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하회마을 충경
하회마을 충경

풍산 류씨 대종택 ‘양진당’

‘양진당(養眞堂)’은 풍산 류씨 대종택이다. 이 고택은 하회마을에서 드물게 정남향의 집으로, 원래 아흔아홉 칸이었으나 현재는 쉰 세 칸이 남아있다.

양진당은 명재상 류성룡의 부친인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과 그의 맏아들 겸암(謙唵) 류운룡(柳雲龍)이 살던 집으로 류중영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랑 대청 앞 처마 아래에 ‘입암고택’ 현판이, 사랑 대청안 북쪽 벽 바라지창 위에 ‘양진당(養眞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양진당’이라는 당호는 이 집을 크게 중수한 류운룡의 6대손인 류영(柳泳)의 아호(雅號)에서 따온 것이다.

하회마을 입암고택
하회마을 입암고택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하회마을 입향조(마을에 처음 정착한 조상) 전서 류종혜 공이 13세기 입향 당시 지은 건물이라는데,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 되는 바람에 중수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양진당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데,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이,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양진당은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고, 口자 형의 안채와 그 북쪽의 사랑채가 一자 형으로 배치됐다. 오른편 북쪽에는 2개의 사당이 위치해 있는데, 정면의 큰 쪽은 입암 류중영 선생, 작은 쪽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 사당이다.

하회마을 입암고택
하회마을 입암고택

불천위는 유교 사회에 있었던 덕망 있는 인물에게 주어지던 서훈의 하나. 부조지전(不祧之典)이라고도 한다.

본래 유교에선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해서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고, 5대부터는 매안(埋安)이라고 해서 신위를 사당으로 옮겨 땅에 묻고 더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나 고인이 특별히 출세했던 위인이거나 덕망이 있는 경우 신위(神位)를 옮기지(遷) 않고(不) 후손들이 대대로 계속 제사를 지내는 것을 나라에서 허용했다.

양진당 사랑채 뒷문을 열면 부용대가 바로 보이고, 툇마루에서 앞쪽을 보면 풍산 류씨 류종혜(풍산류씨는 시조 류절(柳節)의 6세손) 하회마을을 점찍을 때 올랐다는 화산이 눈에 들어온다.

하회마을 입암고택
하회마을 입암고택

명재상 류성룡 선생의 종가 ‘충효당’

충효당(忠孝堂)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이라고 하지만, 선생은 이곳에서 거주하지 않았다.

지금의 충효당은 선생 사후에 지은 집으로, 선생은 다른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

선생은 관직을 파직당하고 하회마을로 낙향해 살던 중 64세가 되던 해(1605년 9월) 하회마을이 수해를 입어 거처를 풍산읍 서미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선생은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1607년 5월 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다.

충효당은 선생의 문하생과 사림이 장손 졸재 원지 공을 도와 지었고. 증손자 의하 공이 확장한 조선중엽의 전형적 사대부 주택으로, 현재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등 52칸이 남아 있다.

충효당 내 영모각은 선생의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하고 있으며, 정원에는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하회마을 방문(1999년 4월 21일) 당시 기념 식수한 구상나무가 있다.

하회마을 그네체험
하회마을 그네체험

소원(所願) 신목 삼신당

하회마을 한가운데에 삼신당이 모셔져 있다.

이 마을 삼신당은 당집 대신에 수령 600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당나무는 높이가 15m, 둘레가 5.4m나 된다고 하는데, 허리춤에 새끼 금줄을 둘렀다.

하회마을이 이 당나무를 중심으로 퍼졌다고 한다. 당 나무는 하회마을의 배꼽인 셈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탈춤판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 이란다.

삼신당
삼신당

당나무 글줄은 관광객들이 갖가지 소원을 적어 매달곤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는지 금줄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늘어져 있다. 소원지 내용은 합격, 사랑, 건강, 취업, 재물 등 각양각색이고 소원지를 적은 언어도 부지기수로 다양하다. 사람은 누구나 몇 가지의 소원을 달고 산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삼신당 앞쪽엔 하회탈 복채함은 단위에 하얀 소원지를 무수히 많이 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백발을 곱게 빚어 올림머리를 한 삼신 할매가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내게 행운을 주실 것 같아 “부자 되게 해달라”는 소원지를 적어 매달았다.

하회마을 사람들도 정월 대보름날엔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 그리고 풍년을 비는 동신제를 모신다고 한다.

해학과 익살, 풍자가 있는 하회별신굿탈놀이

하회마을 여행객이라면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꼭 봐야한다.

하회별신굿은 음력 정초에 서낭신에게 마을 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무병을 비는 동제로, 마을 사람들은 이때 각종 탈을 쓰고 양반과 지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즐겼다고 한다.

별신굿에 사용된 각시탈, 양반탈, 총각탈 등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돼 있다.

하회별신굿 공연
하회별신굿 공연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은 하회마을 입구 쪽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교육관에서 상설공연을 갖고 있는데 매주 6회(화~일요일) 오후 2~3시 관람할 수 있다.

지난해 회별신굿탈놀이는 3만4천여 명에 관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올해 공연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관람할 수 있는데, 매회 공연장은 관람객들로 만원을 이룰 정도로 인기가 여전하다.

참고로 안동 하회탈은 모두 오리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의 탈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하회별신굿 공연
하회별신굿 공연

하회탈은 양반, 선비, 중, 백정, 초랭이, 할미, 이매, 부네, 각시, 총각, 떡다리, 별채탈 등 12개와 동물형상의 주지 2개(암주지 숫주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총각’, ‘떡다리’, ‘별채’ 탈 등은 분실돼 찾지 못하고 있다.

하회탈박물관(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206)을 방문하면 하회탈은 물론 우리나라의 탈, 세계의 가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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