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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영월의 매력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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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영월의 매력에 취하다!
  • 글·사진 김응구 기자
  • 승인 2020.10.23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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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러운 풍경에 박물관 구경 재미까지 풍성

강원도 영월은 ‘박물관 고을’이라고 불릴 정도로 박물관이 많다. 동강사진박물관, 김삿갓문학관 등 어림잡아 20개 안팎이다. 또 ‘한반도지형’이나 영화 ‘라디오스타’는 영월을 바깥세상으로 알리는 ‘홍보 도우미’다. 최근에는 TV 예능프로그램도 몇 번 소개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스릴을 좋아하면 동강에서 래프팅을 즐기면 되고, 산이 좋다면 구룡산 등을 타면 된다. 추위를 느끼고 싶으면 고씨동굴로 가자. 아이들에게 진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면 별빛 반짝이는 날 별마로천문대에 오르면 된다.

영월 요선정 요선암
영월 요선정 요선암

한반도지형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것과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모습까지 위성에서 내려다본 우리나라의 지형을 완벽하게 닮았다. 심지어 호미곶의 툭 삐져나온 꼬리까지 그대로 빼닮았다. 여름엔 울창한 소나무와 무궁화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무료주차장에서 약 1㎞의 탐방로를 따라 걸어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203번지.

영월 선암마을(한반도지형)
영월 선암마을(한반도지형)

선돌

소나기재 정상에서 이정표를 따라 100m 정도 들어가면 거대한 기암괴석이 ‘ㄱ’자로 굽은 강줄기와 함께 나타난다. 선돌은 말 그대로 ‘기암괴석이 서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푸른 서강(西江)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조선 순조 때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이 이곳 암벽에다 새겨놓은 ‘운장벽(雲莊壁)’이라는 글귀가 아직도 남아있다.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373-1.

영월 선돌
영월 선돌

요선암?요선정

요선암은 조선시대 문인 양사언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선녀탕 위 바위에 요선암이라는 글씨를 새겨놓은 것에서 유래했다. 요선정은 숙종·영조·정조 세 임금이 친필 어제시(御製詩)를 남겼을 만큼 그 경치가 뛰어나다. 1913년 수주 요선계(이씨·원씨·곽씨)에서 정자를 건립하고 주천 청허루에 보관 중 방치돼 온 어제시 현판을 가마로 가져와 지금까지 잘 보존하고 있다.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산139.

영화 ‘라디오스타’에 나온 바로 그곳!

‘라디오스타’는 아기자기한 영월을 우리들에게 소개해준 영화다. 어릴 적 추억 같은 부드러운 비주얼은 안성기·박중훈의 편안한 연기와 함께 어우러져 보는 내내 정겹고 반가운 느낌까지 든다. 사진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청록다방, 청룡포모텔, 곰세탁소, 사팔철물점, 기찻길.

영월 청록다방(라디오스타)
영월 청록다방(라디오스타)

주천강(酒泉江) "얼마를 더 기다려야 이 江에선 다시 술을 내어줄까요"

잔뜩 흐리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나는 주천교(酒泉橋) 위에 서있다. 그 아래에는 강이 흐른다. 주천강(酒泉江)다. 물안개 뒤섞인 강은 빗물과 섞여 비릿한 느낌을 주는데 싫지가 않다.

평창․횡성․홍천의 경계에 있는 태기산(泰岐山)에서 발원한 주천강은 횡성군 강림면(講林面)과 영월군 수주면(水周面)·주천면을 거쳐, 서면(西面) 신천리(新川里)에서 평창강(平昌江)과 만나 서강(西江)으로 이름을 바꾼 뒤, 다시 동강(東江)과 만나 남한강이 된다. 길이 95.40㎞, 유역면적은 608.42㎢에 이른다.

영월 주천강
영월 주천강

술이 샘솟는 곳

주천(酒泉)이라는 샘물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이 샘에서는 술이 나왔다고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반이 찾아오면 약주(藥酒)가, 천민이 오면 탁주(濁酒)가 나왔다고. 때는 조선시대, 한 천민은 호기심이 생겼다. 양반 복장을 하고 가면 무슨 술을 내어줄 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렵지 않게 양반 복장을 갖춰 입고 그 샘 앞으로 가서는 약주가 나오길 기다렸다. 정말 약주가 나왔을까? 그 천민 앞에는 여전히 탁주가 나왔다고 한다. 잔뜩 화가 난 그는 단번에 그 샘터를 부숴버렸다. 그 이후부터 술샘에서 술이 나오지 않고, 대신 맑고 찬 샘물이 나왔단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주천샘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소개돼 있다.

“주천석(酒泉石), 주천현 남쪽 길가에 돌이 있으니 그 형상은 반 깨어진 술통과 같다. 세상에 전해 오는 말로는 이 돌술통은 예전에는 서천(西川)에 있었는데 그곳에 있을 때는 술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현(縣)의 아전이 술을 마시려고 그곳까지 가는 것이 싫어서 현 안으로 옮겨놓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옮기는데 갑자기 우레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술샘이 세 개로 나누어졌다. 한 개는 못에 잠기고 한 개는 지금 남아있는 주천샘이고, 다른 하나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영월 주천강
영월 주천강

1447년(세종 29년)에 문과에 급제해 형조․이조․공조판서를 지낸 일제(逸薺) 성임(成任․1421~1484)은 주천석의 샘물을 놓고 시를 지었다.

술이 있어 샘물처럼 흘렀다네.
똑똑 물방울처럼 떨어져 바윗돌 사이로 흘러드는가 하였더니
어느 사이에 철철 넘쳐서 한 통이 다 찼다네.
술빚은 것이 누룩의 힘을 의지한 것도 아니고, 그 맛은 자연 그대로라네.
한 번 마시면 그 기분이 맑은 하늘 위에 노니는 것 같고,
두 번 마시면 꿈속에서 봉래산(蓬萊山)의 빈터에 이르게 되니라.
줄줄 흘러 써도 써도 마르지 않으니,
다만 마시고 취하는 대로 만족할 뿐 어찌 값을 말하였으랴.
당시에 고을 이름 붙인 것도 다 뜻이 있었으리.
마침내 산 속의 귀신들이 우레와 폭풍우로 한 밤중에 술샘을 옮겨 버렸네.
옥검(玉檢)을 위하여 깊은 동학(洞壑)에 폐쇄한 것이 아니면,
반드시 금단지에 저축하여 깊고 깊은 연못에 감추었으리라.
감감하고 비어서 나민 자취 다시 볼 수 없게 되었고,
오직 끊어진 돌 조각만 길가에 가로놓였네.
내 하늘을 되돌려 옛날 샘의 맥(脈)을 돌려놓고자 하거니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군침 흘리지 말게 하라.
내가 원하는 것은 천도복숭아를 안주삼아 밝으신 임금께 바치고,
한 잔을 올리면 천년의 수(壽)를 하려니,
일만 잔 올린다면 다시 만만세(萬萬歲)를 기약하리니,
길이 법궁(法宮)에 납시어 신선과 만나소서.
나는 왜 주천강에 왔을까. 무엇이 보고 싶었을까. 정말 술이 나올 줄 알았을까?
주천강에서 탁주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나는 생전에 천했나보다.

<참조 자료 ‘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엄흥용, 1995)’>

영월 기찻길
영월 기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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