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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함성 따라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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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함성 따라 '진도'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20.10.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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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의 가치, 호국의 함성따라 신안ㆍ진도 힐링여행④
동아리 교사들과 함께 떠난 2박3일 도서 탐방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 그리고 삼별초의 흔적 등을 따라 '진도' 여행을 즐겨보자.

진도의 울둘목

‘명량’은 일명 울둘목으로 진도와 해남 사이의 295m의 물목을 말한다. 거대한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씩 넘나드는 곳이라 좁은 해역으로 물이 흐르면서 솟구치고 울어댄다. 특히 음력 보름 전후 사리 때에 가장 심한데, 시속 12노트(약 20km 내외)의 속력으로 흘러가기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유속을 자랑하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1597년 정유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뒤 12척의 병선을 가지고 왜적을 물리칠 장소로 진도를 선택한다. 음력 9월, 500척 정도의 왜선이 해남 어란진에 머물러 있다가 서해로 북상하기 위해 마로 해역을 거쳐 울둘목으로 쳐들어왔다.

울둘목 물살
울둘목 물살

이에 충무공은 명량해협에서 적과 싸우기 위해 12척의 병선을 이끌고 출전했다. 저들이 해남과 진도의 좁은 목인 울둘목에 도착하면서 싸움이 시작된다. 드디어 장군이 고대하던 정오가 다가왔다.

그때 물때가 바뀌었다. 세차게 물때를 따라서 올라오던 왜선들이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자 갑자기 물의 흐름이 역류하면서 다시 어란진 방향으로 세차게 흘러내려 가기 시작했다. 왜선들이 왔던 자리로 되돌아가려고 배 밑바닥을 역삼각 모양으로 배를 돌리는데 회전 반경이 너무 길어서 급하게 도망가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충무공의 병선들은 총통, 포와 화살을 쏘고 긴 창과 돌멩이를 던지며 왜선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이렇게 12척의 함대를 가지고 왜적의 대부대를 유인하여 131척을 격파한 것은 세계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였다. 명량해협 전투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정유재란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승기를 잡았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해양영웅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장군을 도왔던, 진도군의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던 수군들이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다.

진도 초입 녹진관광지의 진도타워에 오르면 그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7층 전망대에서 다도해의 아름다운 경관과 진도대교의 위용, 울둘목의 물 흐름을 관찰할 수 있다. 거센 조수가 만들어낸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연신 물거품이 용솟음친다. 이곳에 내년까지 케이블카가 만들어지기에 진도를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우선 들러야 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녹진관광지
녹진관광지

 

삼별초 항전지

진도는 서남해의 요충지요 배가 닿기 좋은 곳이라 왜구들이 수시로 노략질을 해왔다. 1270년 초가을, 삼별초가 이곳으로 옮긴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몽고군에 끝까지 항전했던 삼별초군이 마지막으로 저항을 했으나, 2만여 명의 사상자와 포로를 남기며 정부와 몽고 연합군에게 패망하게 된다.

때문에 이곳에는 고려시대 삼별초와 관련된 유적이 유난히 많다. 1984년 진도대교가 놓이기 전, 뭍과의 연결 통로였던 벽파진에서 길은 시작된다. 길목의 용장산성, 지금은 잡풀만 무성한 녹색의 정원인 이곳은 7백여 년 전, 독립 고려의 꿈을 노래하던 곳이다.

용장산성
용장산성

궁터는 꽤 넓다.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이어진 축대가 당시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삼별초군은 이곳에서 끝까지 여몽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결국 패퇴하게 된다. 퇴각하던 왕은 진도읍에서 운림산방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최후를 맞았다.

제주도로 가까스로 옮겨간 김통정의 퇴각로를 따라가면 의신면 만길리에 당시 궁녀들이 떼로 목숨을 잃은 ‘궁녀둠벙’이 있고, 금갑리에는 작은 봉화대 역할을 한 곳과 금갑진성이 있다. 삼별초를 이끌었던 배중손 장군이 선택한 퇴로는 임회면의 남도석성 방향인데 배 장군은 이곳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고려 정부가 몽고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환도를 결정하자 이에 불복해 대몽항쟁의 결의한 삼별초가 진도의 이곳을 10개월 동안 근거지로 삼아 저항했지만, 결국 패하게 된다. 사적 126호의 용장성은 산성의 둘레가 13km에 이른다. 산성 초입에 자리한 홍보관에서 10분짜리 영상물을 통해 스러져간 삼별초의 호국정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접도
접도

‘접도’를 아시나요?

오랜 세월 섬이었던 진도는 제주도와 더불어 최적의 유배지였다. 2007년 간행된 ‘진도군지’를 보면, 진도에 유배된 수백 명의 이름들이 나온다. ‘금수회의록’이라는 신소설을 쓴 안국선 또한 진도에서 유배의 생활을 했다. 박영효와 역모 사건에 연루돼 1904년 진도로 유배 온 그는 진도초등학교의 전신인 진명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적도 있다.

1987년 본섬과 다리로 연결되기는 했으나, 접도(接島)는 조선시대 유배인들의 귀양지 즉 섬 속의 섬이었다. 당시에는 금갑도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후재, 신정조 등 수많은 유배인이 금갑도로 유배의 길을 왔다. 진도군 의신면에 속한 접도에는 원다리, 수품리 등 3개 마을이 있다. 다리 건너 수품리 방면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원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유배인들이 생활했던 곳이다. 마을 한편에 간단하게 ‘유배지 공원’을 조성해 두었다.

빼어난 풍광을 갖춘 접도에는 기암절벽과 함께 상록 활엽수림, 낙엽수림이 자생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전국 최우수 어촌체험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수품의 일출, 남망산의 산행은 빼놓기 어려운 자랑거리라고 한다. 접도는 한때는 유배의 섬이었으나, 지금은 수많은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관광의 섬으로 이미지를 바꾸고 있었다.

원다리 유배마을과 접도리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이내 항구가 보인다. 바로 수품항이다. 수품항 인근에는 어종이 풍부하여 오래 전부터 어민들의 생활근거지였다. 상구자도와 하구자도, 독거도, 죽항도, 슬도의 주민들이 드나들던 항구였다. 북측이 만입되고 동측이 본섬으로 가로막혀 있어 하절기에 태풍의 영향이 비교적 작을 뿐만 아니라 동절기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천연의 항구다. 1971년 11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뽕할머니 조형물
뽕할머니 조형물

한편, 진도 동쪽 해안은 매년 음력 2월 말부터 3월초까지 조수간만의 차이로 해저의 사구가 40m 폭으로 물위로 드러나 바닷길을 이룬다. ‘모세의 기적’으로도 불리는 신비의 바닷길 입구에는 뽕할머니 상징 조형물도 있다. 또한 진도의 운림산방을 거닐다 보면, 왜 이곳이 예술의 고장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학생들과 같이 해양탐방을

이번 탐방에 동참한 선생님들은 보람 속에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여정을 학생들과 동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바닷바람과 갯벌이 주는 가치와 효용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두 곳은 서울에서 마시는 공기의 질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한마디로 청정지역이었다.

김용범 선생님은 “요일이 맞지 않아 상설 공연되는 진도아리랑 같은 걸 못 들었고, 진돗개 테마파크에도 못 가봐 다소 아쉽다. 내년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더 알차게 꾸려볼 생각이다”라고 했고, 진중인 선생님은 “시간이 없어서 암태도 주민들을 만나 1백 년 전의 소작쟁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다음에 올 때는 그런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라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김세일 선생님은 “학급 단위 체험학습지로 신안과 진도 지역을 추가하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적 추상화가 김환기 화백이 안좌도라는 작은 섬에서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 갯벌에서 사는 생물은 칠게, 망둥어, 짱뚱어 이외에 어떤 게 있는지, 충무공은 왜 우리나라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등 체험하면서 생각할 거리는 한둘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만약 이런 곳에 온다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후에 이들의 삶이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질 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지금은 육지시대가 아니고 이제는 해양시대임을 각인할 수 있었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무척 더웠으나 보람 가득한 2박3일의 도서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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