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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의 보고 ‘완도 노화도’....맛있는 섬여행! 섬에서 ‘삼시세끼’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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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의 보고 ‘완도 노화도’....맛있는 섬여행! 섬에서 ‘삼시세끼’⑤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20.07.15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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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이야기가 있는 섬
완도 노화 미라리
완도 노화 미라리

전복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완도에서도 특히 ‘전복’으로 유명한 곳이 ‘노화도(蘆花島)’다. 이
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완도 화흥포항과 해남 땅끝마을을 통해서이다.

땅끝마을이 관광지로 개발된 것은 1986년부터다. 이곳은 평범한 어촌이었는데 1980년 노화도와 보길도로 가는 최단항로가 개발되고 이 마을이 선착장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옆 섬인 보길도와 다리로 연결되기도 했다.

보길대교와 이목리
보길대교와 이목리

지금이야 인구 4천의 소읍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2만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곳이 노화도였다.

예전에 2일과 7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섰다. 개도 만 원 짜리를 물고 다니던 호시절이 있었다.인근의 보길도, 소안도,넙도, 횡간도, 흑·백일도는 물론 멀리 제주의 추자도와 육지인 땅끝에서도 장을 보러 왔었다.

노 젓는 배, 돛단배, 똑딱선, 통통배를 몰고 모여들던 노화장은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있지만, 지금은 그 명맥만 유지하며 추억의 장으로 변해 버렸다. 

지금이야 노화도 서쪽 사람들이 전복으로 우대받지만, 예전에는 동부의 농사짓는 사람이 대접받고 살았다. 농토가 없는 가난한 주위의 섬들은 해산물을 팔아서 식량을 구해 가지고 갔다. 노화도는 곡창지대로 알려졌으며, 60년대 지주식 김양식을 시작하면서 70년대 초에 일본으로 김을 수출하여 높은 소득을 올렸다.

노화도 들녁
노화도 들녁

이제 노화도는 대한민국 최대의 전복 양식장으로도 유명하다. 김양식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위기에 처하자 완도지방을 전복 양식으로 기사회생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비싼 가격이라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바다의 산삼’인 전복이 대량 양식의 성공으로 대중화 길로 열린 데는 미라리 마을 청년들의 고생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전복요리
완도 전복을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이목항의 정반대 쪽에 위치한 노화읍 미라리. 일명 전복의 원조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두 개의 표지석과 한 개의 마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전복 마을 미라리’. 해변에 마을 회관과 미라리 사무소가 있다. 그러나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로 지은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섬 풍경도 크게 바뀌었다. 수억 원씩들여 지은 고급주택이 곳곳에 들어서고, 고급 승용차가 흔하다. 집마다 배 2척, 차량 2대는 기본이다. 선박 건조와 건축 물량이 쏟아지자 섬 안의 조선·건설업체들은 호황을 맞았다. 골프 연습장과 스크린 골프장도 성업 중이다.

완도읍 망남리 전복양식장
완도읍 망남리 전복양식장
전복삼계탕
전복삼계탕. 완도 전복을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전복빵
전복빵. 완도 전복을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사진/완도군, 참고도서 이재언 '한국의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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