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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섬⑭ 주목할 만한 섬 ‘자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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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섬⑭ 주목할 만한 섬 ‘자은도’
  • 글·사진 최홍길(서울 선정고 교사, 수필가)
  • 승인 2020.04.22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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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
무한의 다리/사진-신안군 제공
무한의 다리/사진-신안군 제공

보석같이 아름다운 1004개의 섬이 있는 전남 신안군.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섬을 꼽자면 ‘자은도’다. 한 섬에 큼지막한 해수욕장이 무려 아홉 개나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곳까지 포함한다면 셀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자은도의 여행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층 풍성해진다.

작년 9월에 개통된 ‘무한의 다리’에 이어 올해 5월에는 고둥과 조개를 테마로 한 ‘세계 조개 박물관’이 개장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곧 개봉할 ‘자산어보’라는 영화의 일부 장면도 자은도 바닷가에서 촬영했다. 그 섬을 찾아 떠난다.

천사의 섬 그리고 천사대교

70여 개의 유인도와 수백 개의 무인도를 포함해 1004개의 섬을 갖고 있기에 전남 신안군은 ‘천사의 섬’으로도 불린다. 백제 멸망 이후 변방, 비주류 게다가 벽지였기에 외지인들의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었던 신안의 섬들. 하지만 최근 ‘천사대교’의 개통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천사대교 일출 / 사진-신안군 제공
천사대교 일출 / 사진-신안군 제공

뭇 사람들은 신안 하면 홍도를 우선 떠올리지만, 홍어의 본거지인 흑산도, 중국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가거도, 슬로시티(slow city) 증도, 울창한 송림과 끝없는 백사장을 자랑하는 대광해수욕장의 임자도, 중국 송원대 청자 백자가 무더기로 발굴된 도덕도, 일제강점기 소작쟁의의 대명사인 암태도, 김환기 화백의 고향 안좌도, 시금치로 유명한 비금도, 바람 따라 그 형태가 변하는 모래산의 우이도, 만조 때는 세 개의 섬이 되고 간조 때는 하나의 섬이 되는 소악도 등도 모두 신안의 섬들이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인공섬이기에 나름의 문화는 있으나 자연은 빈약하다. 또한 베트남의 하롱베이는 신비의 자연풍광을 자랑하고 있으나 사람이 살지 못해 문화가 없다. 그런데 베네치아와 하롱베이는 한 해에만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신안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사람이 만들어온 고유의 문화가 같이 어우러져 있기에 이 두 곳을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수욕장은 기본이고,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선돌, 독살, 우실, 노두 등)도 이곳에는 많다.

신안의 섬들이 지난해 4월 천사대교 개통과 함께 그동안 덮어 두었던 베일을 벗어 던지고 속살을 선보이고 있다. 7.2km에 달하는 천사대교를 자가용으로 9분 가까이 달리는 동안 점점이 박힌 섬들과 그 주변의 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다리 개통으로 관광객들은 여객선을 이용하지 않고도 대교 건너 10개의 섬 자은도, 암태도, 추포도, 팔금도, 매도, 안좌도, 박지도, 반월도, 자라도, 부소도 등을 볼 수 있다. 그 중 요즘 SNS에 자주 오르내리는 가장 핫한 곳을 꼽자면 단연 ‘자은도(慈恩島)’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자은도’

청동기 유적인 지석묘가 있기에 자은도에서도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런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듯 암태도 북강에서 시작된 은암대교를 지나자마자 자은도 남진 초입에는 ‘역사와 자연관광의 자은-어서 오십시오’라는 대형 표지석이 자리해 있다. 바로 이어서 네 개의 비(碑)가 나란히 정렬돼 있어 이채롭다.

자산어보 촬영지 '소한운 해수욕장'
자산어보 촬영지 '소한운 해수욕장'

최초 입도자 또는 그 후손으로 추정되는 묘비인 ‘석씨 묘비’, 선정을 베풀자 주민이 세운 비인 ‘나주목사 김후기 불망비’, 일제 때 백산리 용소를 일본해군의 식수로 사용한 흔적을 말해 주는 ‘용수장 표지비’ 등이 자리한 채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지석묘와 패총, 봉수터, 한운리 동남쪽의 도자기 터 등이 있다. 1377년 고려 우왕 때 구영에 영(營)에 설치되었고, 1896년 이후 일본수군이 자은도를 진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유각리에는 말을 키우는 목장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자은도의 지명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관련이 있다. 임란 때 선조의 요청에 따라 왜군을 물리치려고 지원 왔던 이여송 장군의 휘하에 ‘두사춘’이 있었다. 그는 남의 나라에 와서 싸우다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군대를 이탈하여 각지를 전전하다가 자은도에 도착했다. 섬의 지형이 모난 데가 없고 인정 또한 온후하여 난세에도 생명을 보존하게 됨을 감사히 생각하게 되고 그 정을 못 잊어 사랑(慈)과 은혜(恩)의 섬이라 칭한 것이다.

소작쟁의 등 근현대 풍파의 현장 ‘자은도’

자은도는 소작쟁의, 붉은 3개월의 학살 등 근현대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었다.

20세기가 막 시작된 1901년 9월 6일 자 황성신문에 자은도란 이름이 등장한다. 천주교회가 1866년 포교의 자유를 획득한 이후 교세가 확장되면서 각 지역의 천주교민과 지방관리, 토착주민 사이에 세금을 놓고 분쟁이 일어났다.

이 중 지도교안(智島敎案)은 교회가 일반 백성들과 더불어 지방관을 배척했던 사례로 거론된다. 1901년 9월 드예 신부가 가산 징수를 직접 따지려고 지도군수를 방문하다 군수와 신부의 수행원이 언쟁을 벌인 끝에 신부측 교인들이 지도군 관속들로부터 구타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일 처리 문제로 양국 간에 1년여 동안 힘겨루기가 계속되다가 결국 지도군의 관속들이 처벌받는 선에서 끝났다. 즉 프랑스라는 제국주의의 힘을 내세운 교회 측이 승리를 거둔 셈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에 따라 프랑스가 물러나자 천주교회 역시 그 힘을 잃고 말았다.

1923년 8월부터 1년여 걸친 암태도 소작쟁의가 소작회 측의 승리로 돌아간 뒤 인근 섬들에서도 쟁의가 빈발하게 되었다. 1925년 12월부터 다음 해인 1월까지 불과 2개월 간에 걸친 항거였지만, 자은도 소작쟁의는 일제 통치세력과 지주들의 강력한 탄압에 맞서서 힘찬 투쟁을 보여주었다.

암태 소작쟁의기념탑
암태 소작쟁의기념탑

암태도 소작쟁의가 무대를 목포로 옮겨 일제에 저항을 시도했고, 문재철이라는 지주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전제로 이어진 사건이었다면, 자은도의 그것은 150여 명의 대단위 전남도 내 경찰들이 소작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한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투쟁이 격렬했으며 도서 지역 단위 쟁의로는 가장 많은 이들이 구속되었다.

자은도 소작쟁의가 조직적인 지원과 연대를 통해 자은도를 벗어나 지역의 외연을 넓혀나가려는 때, 뜻밖에 그 쟁의는 비교적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하지만, 쟁의가 타협점을 찾아 해결됐다고 해서 문제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한 해가 다 지나지 못해 또 다시 소작인이 구류처분을 당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석방된 사람들이 소작쟁의 때 경관에게 편의를 제공한 사람들과 갈등 관계에 놓인 것이다. 이는 지주 편과 소작인 편으로 나뉘어 양자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음을 뜻한다.

이런 갈등의 여파는 6․25 당시 ‘붉은 3개월’ 동안 처절하게 나타났다. 신문기사를 참고해 보면, 남로당원들에 의한 폭동을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 일어났음을 전하고 있다. 자은도는 신안 임자도․지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양민들이 죽음을 당하고야 말았다. 붉은 3개월 학살의 연원은 소작쟁의 당시 소작인에 닿아 있는 이른바 좌파계열의 사람들이었다. 수복 후에는 우익 계열의 사람들에 의해 다시 학살이 행해졌는데 주로 좌파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때 서로 죽이고 죽은 사람들은 함께 섬을 지키며 모진 세월을 같이 했다.

화해 평화의 상징 ‘충혼탑

이 같은 근현대사의 시련 속에서 자은도 사람들은 이 갈등을 극복해 내려고 애를 썼다. 부락과 부락 사이에서, 같은 부락민들끼리도 그 갈등이 있었기에 이를 다스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앞세운 기독교에 귀의하는 것이었다. 그 화해를 위해 기독교가 큰 몫을 담당했고, 현재 성결교회로 통일된 여러 개의 교회가 결과물로 남아 있다.

자은도 충혼탑 /사진-자은면사무소 제공
자은도 충혼탑 /사진-자은면사무소 제공

자은중학교 정문 쪽에는 충혼탑이 보인다. 2000년에 들어선 이 충혼탑은 자은도민의 화해의 상징물이다. 탑 주위를 둘러봐도 이 탑을 왜 세우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고, 단순하게 20여 명 남짓의 성명만 나열돼 있다. 전술한 3대 사건 중 좌우익에 따른 이데올로기 갈등을 추스르고자 충혼탑을 세웠으리라 생각된다.

두봉산 올라가는 길
두봉산 올라가는 길

등산 애호가 부르는 ‘두봉산’

구영리는 면 소재지 마을로, 뒤쪽에 두봉산(斗峰山)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말이 들어 있는 말봉산으로 부른다. 인근 암태도에 승봉산이 있는데, 되봉산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천지가 개벽할 때 한 말 정도 크기의 땅이 솟아 말봉산이 됐고, 한 되만큼의 땅이 솟아 되봉산이 됐다는 전설이다. 말봉산과 되봉산의 높이 차이는 고작 8m뿐이다. 천사대교 개통 이후, 산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이 전세버스를 대절해 이 두 산을 오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자은도는 해수욕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백길․면전․신성․분계․양산․내치․외기․신돌․둔장 등 모래밭 해수욕장이 아홉 곳이나 된다. 이 밖에도 규모가 크지 않은 해수욕장은 셀 수가 없다. 신성리의 어떤 집 앞마당에 작은 해수욕장이 있을 정도이다.

두봉산 정상
두봉산 정상

 

분계 해수욕장의 여인송

아홉 개의 해수욕장 가운데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곳은 백길과 분계 해수욕장이다. 깨끗한 바닷물과 깊지 않은 수심으로 유명한 백길 해수욕장은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도 바다의 묘미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관광객들은 바닷물이 많이 빠지면 더 넓게 드러나는 백사장, 입자 고운 모래를 밟으면서 느끼는 푹신한 감촉, 바다 한가운데 아련히 떠 있는 무인도 등의 자연미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인송의 여인들
여인송의 여인들

분계 해수욕장은 백사장 뒤편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길이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태풍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만들어진 이 숲은 몇 년 전에 천년의 숲 부문 어울림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넓지는 않으나 깨끗한 모래사장과 해안을 따라 펼쳐진 울창한 송림은 한 폭의 동양화다.

수백 그루의 소나무 가운데 여인이 하늘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인송(女人松)’이 하나 있다. 고기잡이를 하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무사귀환을 빌던 부인은 가장 큰 소나무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다 어느 추운 겨울 얼어 죽고 말았는데 돌아온 남편이 부인의 시신을 수습해 그 소나무 아래에 묻어주자, 나무는 거꾸로 선 여인의 자태를 닮은 여인송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여인송 앞에서 기념을 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자은도 분계해수욕장
자은도 분계해수욕장

이 가운데 둔장 해변은 가장 길고 넓으며 완만하다. 모래와 뻘흙이 섞였는데도 바닥이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는다.

해변 한쪽에 자리한 동양최대 규모의 독살은 원시어업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돌을 쌓아 물을 가두고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이 같은 이유로 농촌진흥청의 ‘케렌시아’ 관련 여행지에 선정되기도 했다.

독살은 바다에 친 돌울타리를 말한다. 밀물 때 여기를 넘어 들어왔다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돌담 사이로 물은 빠지지만 물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돌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돌담 한가운데 하수관 같은 관을 묻어 바다로 튀어나온 관 끝에 기다란 그물을 걸어둔다. 여기에 갇힌 물고기들이 이 관으로 몰려들어 그물에 걸리게 되는 손쉬운 어업법이 독살법이다.

자은 둔장해변 천도천색길 해사랑길포토조형물일몰 /사진- 신안군
자은 둔장해변 천도천색길 해사랑길포토조형물일몰 /사진- 신안군

핫 플레이스 ‘무한의 다리’

독살 바로 위에 ‘무한의 다리’가 작년 9월에 개통되었다. 섬과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연속성과 끝없는 발전의 의미를 담아내고자 명명한 이 다리는 둔장 해변에서 동구리섬과 할미도 등 두 개의 섬을 잇는 1004미터 보행교로, 환상적인 해넘이 장소로 알려지면서 그 멋진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수많은 외지인들이 찾고 있다.

다리 주변에는 사월포 포구와 소롱산, 대두리도․소두리도의 무인도, 풍력 바람개비 등이 있어서 이 또한 사진작가들이 애호하는 장소이다. 관광객들은 다리 위를 걸으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멋과 맛을 만끽한다. 게다가 위대한 자연 앞에서 삶의 의욕까지 다잡는다.

무한의 다리에서
무한의 다리에서

독살 인근에 자리한 ‘해넘이길’은 국토부가 선정한 해안누리길 5선에 뽑혔다.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소나무 숲길을 걷는 재미는 남다르다. 산 속의 임도(林道)인 해넘이길은 전체 길이 12km 정도이고, 약 두 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

봄에는 주변의 꽃들을 보면서, 여름에는 피톤치드의 마력에 빠져서, 가을에는 단풍의 빛깔에 반해서, 겨울에는 맵찬 해풍에 맞서서 걸을 수 있기에 사시사철 색다른 맛을 주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한의다리
무한의다리

한편, 양산 해변 부근에는 고둥과 조개류를 테마로 한 ‘세계 조개 박물관’과 ‘천사섬 수석 미술관’이 곧 개장한다. 1만여 종의 희귀 조개와 고둥, 1천여 점의 수석이 있기에 관람객들의 탄성이 쏟아지는 곳이다. 주변에는 드넓은 백사장과 깨끗한 바다가 있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반드시 들를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은 개발되지 않아서 더 매력적인 자은도. 이 곳에 둔장 해변에서 분계 해변까지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관광자원들이 갖춰지면 그동안 무명의 섬에서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힐링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자은도가 스트레스에 찌든 외지인에게 그 이름처럼 사랑과 은혜를 골고루 나눠줄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백길해수욕장
백길해수욕장

 

자은도의 여름

                 -은희송

 

천년노송 해변에서
노숙을 하고
비취빛 바닷물에
수영을 하고
기암괴석 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매연 한 점 없는
산에 오르면
보이는 것은 수평선
끝없이 펼쳐지는
꿈의 세상

<참고도서 : 도서문화 21집(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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