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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시조·가사)의 섬을 찾아서...‘만언사’ 탄생지 ‘추자도(楸子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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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시조·가사)의 섬을 찾아서...‘만언사’ 탄생지 ‘추자도(楸子島)
  •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19.03.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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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이야기가 있는 섬②
▲ 다도해 여명 ⓒ이범진 사진작가

제주도는 수려한 경치, 독특한 문화와 풍속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또한, 육지와의 해상 및 항공교통이 편리하여 우리나라 제1의 관광지이면서 국제적인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에 가보는 게 꿈인 베트남 중고생들도 제주도를 여행지 1순위로 꼽고, 북한의 대학생들 또한 제주도를 우선 생각한다고 한다.

인기 여행지 ‘제주도’ 주위에는 섬이 많다. 제주도를 호위하는 병사처럼 사방에 산재한 8개 유인도(우도, 마라도, 가파도, 추자도 등)와 54개 무인도 등 무려 62개의 섬이 있다.

참고로 제주의 마라도에는 ‘대한민국 최남단비’가 있는데 관광객들이 반드시 기념사진을 찍는 곳으로 유명하다.

▲ 섬속으로 ⓒ이범진 사진작가

지금은 제주도가 관광지로 유명해졌지만,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배지였다.

임금이 사는 한양에서 가장 멀 뿐 아니라 거대한 바다와 험한 파도로 가로막혀 있어 유배의 최적지였던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만 2백여 명의 선비들이 풍선(風船)을 타고 험난한 바다를 건너서 제주도로 귀양길에 올랐다. 귀양이라는 형벌은 거의 정치적인 이유였다. 과거에 급제하면 집안이 번성해지고 권세를 누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어 귀양이 결정되면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한양을 떠나야 했다. 제주도에 유배된 유명인으로는 광해군과 김정희가 있었다.

* 벗어날 수 없는 천혜의 ‘유배지’에서 세기의 작품을 남기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 동안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추사는 대정현에서 -노도의 서포처럼- 울타리가 쳐진 집에서 밖으로도 나갈 수 없는 형을 받았다.

보통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데 환경이 아주 가혹했지만 여기서 추사는 특유의 필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1844년에는 인생의 최고 작품인 세한도(국보 180호)라는 작품을 남겼다.

▲ 상추자도 일몰 ⓒ이범진 사진작가

정조 때의 안조환은 국고금을 축낸 죄로 34세 때 추자도에 귀양을 갔다. 1년 4개월 동안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자신이 지은 죄를 눈물로 회개하는 내용을 애절하게 읊은 ‘만언사’라는 가사(歌辭)를 창작했다.

이 작품은 유배문학에 속하는 다른 가사들에 비해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사실적으로 밝혀 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 유배지에서의 희노애락(喜怒哀樂) 담긴 ‘만언사’

이 작품의 작가는 당쟁과는 관계없이 공무상의 개인적인 비리로 유배되었기 때문에 유배 생활의 억울함을 주장하지 않았으며, 임금에 대한 그리움이나 충성심이 작품의 지배적 정서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유배지에서의 궁핍한 생활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양반 출신의 정치범이 아니라 경제사범인 중인계급의 작품이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있는 허식과 과장이 없고, 위선과 위엄을 벗어버린 인간 그대로의 체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서민적이고 사실적인 작품이다.

▲ ⓒ이범진 사진작가

작가는 ‘추자도’에 도착해 거처할 집을 구하려 했으나 문전박대를 당한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고 거친 음식을 먹거나 굶기도 하면서 남쪽지방의 찌는 더위에 고생한다.

동네 사람이 일하지 않고 공밥을 먹는다고 타박하자 고약한 인심을 탓하다가, 일을 하려고 하나 경험이 없었기에 결국 동냥을 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허름한 곳에서 지내며 겨울에는 추위에 떨고, 옷 1벌로 4계절을 지냈다는 등 궁박한 사정을 늘어놓기도 한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고 짖던 개가 지금은 꼬리를 치니 귀양살이가 오래되었음을 알고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유배에서 풀려나기를 빈다.

이 작품은 ‘사고향(思故鄕)’이라고도 한다. 이본으로 필사본 3종이 전하며, 필사본에 따라 작자 안조환이 안도환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추자도라는 유배지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지은 죄를 회개하는 내용을 궁녀들이 접한 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 나바론 절벽 ⓒ이범진 사진작가

이 같은 이유가 임금에게 알려져유배에서 풀려났다는 일화도 있다. ‘만언사’의 내용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제주 방언은 육지인들이 알아듣기 힘든 말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한국어족의 고유 어휘가 많이 보존돼 있기에 살려 쓸 만한 제주어 단어들을 찾아내야 함은 학자들의 당연한 몫이리라.

다행이 최근에는 제주 소재 상점 등의 이름에 제주방언이 많이 쓰이고 있어 느껍기도 하다.

▲ 출어 ⓒ이범진 사진작가

<사진 이범진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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