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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섬①서편제의 무대, 환상의 섬 ‘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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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섬①서편제의 무대, 환상의 섬 ‘청산도’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19.02.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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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그리고 천천히 증도와 화도, 청산도에 살어리랏다!

청산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한 섬으로 현재 2천여 명이 산다. 청산도 주변은 대모도, 소모도, 여서도, 장도 등 네 개의 유인도와 여러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뱃길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먼 길이지만, 한 번 다녀온 후에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환상의 섬이다.

특히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이후 ‘봄의 왈츠’, ‘여인의 향기’ 등을 촬영하며 청산도가 전국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 관광객이 청산도 슬로길에서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 사진-완도군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

삭막한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청산도에 가면, 고향의 품과 같은 아늑함이 깃든다.
섬 곳곳에는 청산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초가집, 흙돌집, 돌담길, 구들장 논, 고인돌 등과 같은 옛 풍물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정부의 문화재 보호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모습 그 자체로 남아 있어, 그야말로 섬 전체가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이다.

▲ 청산 화랑포 느림 포토존 조형물 / 사진-완도군

청산도의 무한한 가치는 각종 타이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선정, 문화체육관광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선정, 국제슬로시티연맹 세계슬로길 국내 제1호 공식인증, 한국관광공사 지정 대한민국 최고 가족체험 여행지,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청산도 구들장 논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행정자치부와 한국관광공사 공동주관 가을휴양철 테마섬 쉴 섬 선정 등에서 그 진면목을 짐작할 수 있다.

▲ 청산도 바다

* 청산도의 중심지 ‘당리’

청산도의 관문은 도청항인데 ‘도청’이라는 지명이 특이하다. 한때 조세를 받던 기관인 국세미도봉청(國稅米都奉廳)이 설치되면서 ‘도청리(都廳里)’로 불려오다가 진(鎭)이 없어짐에 따라 ‘도청리(道淸里)’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도청리 바로 옆에 있는 ‘당리’는 일반인에게 영화 ‘서편제’의 무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청산도의 중심지다.

▲ 청산도 서편제길 서편제 재연행사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측은 “읍리가 청산도의 옛 중심지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했다. 당리마을을 지나면 나오는 ‘읍리’의 이름이 향교동이라고도 불렸고, 고인돌 옆에 ‘하마비’가 남아 있어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는 읍리에 상당한 세력가들이 살았음을 보여 준다.

이 하마비는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데, 하마비의 뒷면에는 마애불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는 민속 신앙과 불교가 하나로 어우러진 형태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하마비를 두고 선사시대 때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선돌’로 보기도 한다. 이 하마비의 높이는 1m 정도, 폭은 80cm에 이른다. 자연 화강암인 이 돌은 현재 문화재 자료 제116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또 도청항은 일제강점기 때 유명한 고등어 어업기지로, 봄과 여름의 성어기에는 전국에서 수백 척의 어선이 몰려와 파시가 열렸다. 그러나 7,80년대 들어서면서 어업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외지에서까지 몰려든 어선들이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불법 저인망 어장이 성행하면서 점차 바다가 황폐해져 갔다.

지금 청산도 근해의 어선어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과거보다 훨씬 못하지만 철에 따라 멸치, 삼치, 갈치어장이 형성되고, 소라, 전복, 미역 따위의 해산물을 채취한다.

▲ 청산 도락리 슬로길/ 사진-완도군

* 범바위와 구들장 논

도청리에서 청산로를 따라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안으로 들어가 언덕에 장독대가 몇 개 놓여 있는 공간이 보인다. 당리 언덕인데 이곳에 공원이 조성됐다. 

숲 속에는 청기와로 된 당집이 있다. 그 문 앞에는 불망비가 있다. 그 옆에 초가집 네 채가 있는 촬영장이 나타난다. 영화 속 소리꾼 유봉과 의붓딸 송화는 남서쪽 경사진 밭을 따라 펼쳐진 돌담길을 걸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때 열창한 노래가 진도아리랑이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한 돌로 만든 담장, 울퉁불퉁한 마을길,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들이 한 번 찾아가면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고향 같은 곳이 청산도이다.

▲ 청산도 구들장논 모내기

청산도에는 ‘구들장 논’도 있다. 섬 사람들의 삶의 팍팍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논이다.

산비탈이나 구릉에 마치 구들장을 놓듯 돌을 쌓아 먼저 바닥을 만든 뒤, 그 위에다 다시 흙을 부어 다져서 논을 일군 것으로, 청산도에는 돌이 많아 물이 고이지 않기 때문에 농사를 짓기 위한 방편으로 돌을 깔았다.

그러다보니 흙이 기름지지 못했고 퇴비를 매년 해야 했다. 농토가 그리 넉넉하지는 못한 청산도에는 항상 쌀이 모자랐다. 돌이 너무 많아 농사를 부칠 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청산도에서 나고 자란 처녀가 뭍으로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만 먹고 가면 부잣집’이라는 말이 있었을까.

읍리에서 신흥리로 가는 길목에 ‘범바위’ 가는 길이 표시돼 있다. 범바위를 보려면 청산로에서 벗어나 섬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맑은 날이면 제주도까지 보인다는 보적산 8부 능선가파른 곳에 있는 ‘범바위’는 높이 155m의 봉우리다. 어미 범이 뒤따라오는 새끼 범을 돌아보는 모습의 이 바위는 호랑이가 바위를 향해 ‘어흥’하고 포효했더니 바위의 울림이 호랑이 울음소리보다 크게 울려 놀라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

▲ 청산도 범바위

* 낙조로 붉게 물든 다도해 풍경이 고와라

‘지리 해수욕장’은 1km가 넘는 은빛 모래밭을 따라 수령 2백년도 더 되는 800여 그루의 해송이 쥘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전포해변에 인력으로 둑을 쌓아서 바닷물을 막고 소나무를 식목하여 현재와 같은 방풍림이 조성되었다.

또한 해수욕장 오른쪽으로 산을 슬쩍 돌아가면 작은 돌부터 호박만 한 돌까지 깔려 있는 자갈밭이 있다.

청산도에서 낙조가 아름다운 곳도 바로 지리 해수욕장인데, 해가 질 무렵이면 온통 붉게 물든 다도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지리마을 옆 도로변에 두 개의 열녀각도 있다.

▲ 청산도 국산리 자갈밭

* 강태공 부르는 갯바위 낚시 명소

남해의 대부분의 섬이 그렇듯 청산도 또한 갯바위 낚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산도는 섬 전체가 낚시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데, 지금도 발길 닿는 곳마다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는 사계절 갯바위 낚시터로 유명하다. 도미, 우럭, 농어가 잘 잡힌다. 특히 감성돔이 지나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전국에서 강태공들이 몰려든다.

* 서남해안 군사적 요충지였던 청산도

청산도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서남해안 바닷길의 요충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 일대가 전란에 휩싸여 거주하는 사람이 없다가 효종 때 다시 입도했다.

이 지역은 제주도와 연결되는 해로상의 위치 때문에 끊임없이 왜구의 침입을 받아왔다. 왜구들의 침해사실을 살펴보면, 조선 태종 때부터 민간인들을 납치, 도주하는가 하면 약탈도 많이 했다.

이에 숙종 7년에 수군만호진이 설치됐고, 고종 3년에는 이곳에 청산진이 설치돼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근래 들어 원래 높이 15척, 길이 10리에 달했던 청산진성이 당리마을에 복원됐는데, 이 곳에서 당리, 읍리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유채꽃 만발한 봄의 풍경이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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