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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아리랑’ 속으로 떠나는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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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아리랑’ 속으로 떠나는 문학기행
  • 김초희 기자
  • 승인 2018.09.21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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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해사 낙조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김제로 아리랑 문학기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일제강점기 우리민초들의 생활상을 그린 조정래작가의 소설 ‘아리랑’을 테마로 한 여정을 따라가보자.

아리랑 등장인물들의 고향인 김제에 세워진 아리랑문학관과 아리랑문학마을을 둘러보고, 소설속에 등장하는 이름인 하시모토 농장사무실과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간척지를 둘러보는 코스이다. 마치 대하소설 한 편을 본 것 같은 여행의 감동이 생생하게 밀려온다.

▲ 아리랑 문학관

아리랑 문학관

아리랑 문학관은 민족의 근현대사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가 조정래선생과 그 중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 아리랑,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김제만경들의 문화사적 의미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아리랑 및 조정래선생과 관련한 350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제 1전시실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험난한 대장정이 각 부의 줄거리와 함께 시각자료로 제공되며, 영상자료인 ‘작가의 인사말’은 김제와 아리랑, 작가 조정래를 잇는 중요한 접점으로 관람시 빼놓아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제 2전시실은 작가연보와 작품연보, 사진으로 보는 작가의 인생 및 취재 시 일용품, 창작의 과정을 좇아 빼곡히 정리된 취재수첩 및 자료노트들이 전시돼 있다. 제3전시실은 가족사진 및 애장품 등을 통해 작가와 주변을 살필 수 있다. 신문기사들, 앨범, 필기구, 안경, 펜, 문진용 자연석, 작가 자신이 손수 그린 자화상 및 아내에게 선물했던 펜화 등을 볼 수 있다.

▲ 아리랑 문학마을

아리랑 문학마을

아리랑문학마을은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이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한 곳이다. 쌀가마니와 논의 형상을 표현한 홍보관을 비롯해 주재소, 면사무소, 우체국, 정비소 등 일제강점기 민족의 수탈을 대표한 주요기관을 둘러볼 수 있다.

또 소설 아리랑의 발원지,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수탈과 고난의 삶을 소설 속 주인공의 생활터전을 통해 느껴볼 수 있는 내촌‧외리 마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인공들의 삶의 모습을 스토리텔링기법으로 표현했다.

▲ 아리랑문학마을 하얼빈

이민자 가옥은 토지조사사업, 산지증식계획 등으로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고 만주, 시베리아 등에서 새롭게 터를 잡아야 했던 우리 선조들의 애환을 다시금 생각게 한다.

1910년 실존 건물을 토대로 60% 축소 복원한 하얼빈 역사도 감상할 수 있다. 하얼빈 역사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역사 교육장이기도 하다.

▲ 하시모토농장사무실

하시모토농장사무실

일제강점기 도내 일본인 대지주 중 하나인 하시모토〔橋本〕의 농장사무실 건물로써 근대 양식풍건축이다. 외벽 하부는 인조석 붙임을 하였고 상부는 줄눈을 살렸다. 지붕은 곡선진 멘사드형으로 정면과 배면에 각각 2개 씩 도머(Dormer)창을 냈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었다. 지붕은 함석으로 테두리를 둘렀으며 처마 끝에 물받이가 있다.

1906년 하시모토는 군산에 들어왔으며 1911년 동진강 일대의 개간지를 불하받아 개간에 착수해 이듬해 공사를 완공했다. 이어서 죽산으로 거주지를 이전하였으며 1916년 5월부터 농장경영을 시작했다.

황금들녘, 광활면 간척지

김제에서 부안방면으로 15km정도 가다보면 김제평야의 젖줄인 동진강 하류가 보이며 그 강둑위로 펼쳐지는 평야, 바로 그곳이 간척지다. 푸르른 하늘과 황금빛 물결치는 들녘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풍요로워지는 듯하다.

무르익은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이곳은 1924년 일제의 동진농업주식회사가 9.5km의 방조제를 준공해 간척지를 확보한 곳이다. 1927년, 1929년, 1932년에 걸쳐 여러개의 방조제를 건설함으로써 만경강 입구의 진봉면을 비롯해 동진강 입구의 광활면, 죽산면, 동진면 일대에 새 간척지가 조성됐다.

이 곳 간척지는 일조량이 많고 병충해 발생이 적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신생토양지로 퇴적유기물과 무기질이 풍부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청결미는 낱알이 크고 투명도가 높아 미질이 우수하고 밥맛이 찰지며 쫄깃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 망해사

망해사

깎은 듯이 세워진 기암괴석 벼랑위에 출렁이는 서해의 파도를 내려다보고 있는 망해사는 김제에서 서북방 약 27km 지점에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곳은 본시 섬이었다 하여 642년(백제 의자왕 2년)에 부설거사가 까닭이 있어 이곳에 사찰을 개창해 수도하다가 입적한 곳이라 한다. 그 후 754년(경덕왕 13년)에 당나라의 중 중도법사(일명 통장화상)가 중창하였으나 조선조에 들어 많은 수난을 당했다. 그 뒤 인조대왕 때 만경 불거촌출신인 고명한 화상인 진묵대사가 재건복구해 크게 번창했다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망해사 경내에는 보광명전을 비롯해 낙서전, 칠성각, 요사 그리고 4개의 부도가 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8호인 낙서전은 비록 규모가 작으나 이익공집으로 초가지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고 구식 한와로 지붕을 덮고 있다. 낙서전 맞은 쪽으로 있는 노거수 2그루는 망해사의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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