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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패망 후 부흥운동 최후 거점 ‘부안 우금산성’에서 ‘동문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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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패망 후 부흥운동 최후 거점 ‘부안 우금산성’에서 ‘동문지’ 확인
  • 김채현 기자
  • 승인 2018.01.1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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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현장 설명회 16일 열려
▲ 동문지 모습 / 문화재청 제공

[투어코리아] 백제 패망 후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최후 거점으로 알려진 ‘부안 우금산성(禹金山城, 전라북도기념물 제20호)’에서 ▲동문지(東門址)와 등성시설(登城施設, 계단) ▲동문지와 인접한 성벽구조 등이 확인됐다.

이는 부안군과 (재)전북문화재연구이 성 동쪽구간에 대한 성곽시설을 확인하기 위한 발굴 조사과정에서 확인됐으며, 이번 발굴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해 올해 3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에 확인된 ‘동문지’는 변산 정상과 이어지는 경사면에 있으며, 출입구 형태는 개방문(開拒式, 개거식)으로 판단된다.

두 차례 이상 고쳐쌓은(수개축, 修改築) 것으로 추정되며, 1차 문지의 규모는 길이 3.5m, 너비 3.9m이며, 2차 문지는 길이 7.1m, 너비 3.3m로, 1차 문지보다 너비가 줄었다.

▲ 동문지, 등성시설 모습/ 문화재청 제공

특이한 점은 2차 문지 양쪽의 측벽에 너비 32~50㎝, 깊이 47~70㎝의 나무기둥(목주, 木柱)홈이 여섯 군데 시설돼 있으며 바닥에는 주초석(건축물의 기둥을 받쳐주는 돌)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더 이른 시기에 발견된 문지에서는 보통 땅을 파서 기둥홈을 마련하는데 우금산성은 목주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등성시설(登城施設, 계단)은 동문지의 내부 북쪽에서 확인됐으며, 길이 4.2m, 너비 6.4m이며, 길게 깬 돌을 이용하여 계단 형태로 쌓았다.

동성벽은 바닥면을 잘 고른 뒤 모래흙과 풍화토를 깐 후 길게 깬 돌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로 축조했다.

유물로는 다량의 어골문(魚骨文, 생선뼈무늬), 격자문(格子文, 문살무늬)이 새겨진 기와와 ‘부령(扶寧 부안 일대 옛 지명)’명 기와, 청자와 분청사기 조각 등의 유물도 출토됐다.

▲ 출토유물 '기와' / 문화재청 제공

이번 조사는 우금산성의 문지 축조 방법과 성벽의 구조, 등성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복원·정비 사업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부안 우금산성’ 유적에 대한 학술자문회의와 현장설명회가 16일 오후 2시에 발굴현장(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65-3번지)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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