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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한류’ 꿈꾸며 베트남 ‘응우옌 주’ 중학교에서의 9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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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한류’ 꿈꾸며 베트남 ‘응우옌 주’ 중학교에서의 90일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17.07.0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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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②
▲ 한글을 쓰고 있는 베트남 학생들

[투어코리아] 베트남의 매력을 다 알기엔 며칠의 일회성 여행으론 부족하다. 다행스럽게도 교육부가 주관하는 ‘다문화 대상 국가와의 교사교류’의 일환으로 3개월(2016년 9~11월)간 베트남 ‘응우옌 주’ 중학교에 체류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90일간 학교에 머물며 좀 더 가까이에서 베트남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특히 한류 열풍이 뜨거운 베트남에서 ‘교육 한류’ 가능성을 엿본 90일간의 체류기를 공유한다.

▲ 등교시간에 부모들이 자녀를 학교까지 오토바이로 태워다주느라 학교앞이 북적거린다


베트남의 뜨거운 교육열

현재 베트남의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3년이다. 5월말부터 3개월 동안의 장기방학에 들어간다는 게 특이하다. ‘도이모이’라는 개방정책 실시 전까지는 여느 사회주의 국가처럼 무상교육을 실시했으나, 1990년 이후 유료 교육제도가 도입되었다. 지금은 초등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고 중학교 과정부터는 유료이다.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상급학교에 가지 못한 학생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교육열은 매우 뜨겁다. 특히 토요일 같은 날은 학원에서 영어교육을 받는 어린이들도 적지 않다. 학교에서의 우열반 편성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녀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열망이 과거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경제성장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자녀들을 미국, 영국, 프랑스, 한국 등의 해외로 유학을 보내기도 한다.

▲ 모둠별 발표 모습

2주 정도의 참관수업이 끝나자 교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비좁은 교실에 40-50명이 앉아 더위를 물리치며 수업에 참여했다. 에어컨이 있었으나 물이 새는 등 열악했다.

학생들은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모둠별 토의와 발표 수업은 기본이었다. 우리와는 달리, 쉬는 시간이 고작 5분 뿐이었다. 12시경에 급식을 먹은 후 교실 문을 잠근 채 낮잠을 자는 모습은 이채롭기까지 했다.

▲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재등교하는 베트남 학생들

어떤 학생들은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서 잠을 잔 후 1시50분경에 재등교를 하기도 했다. 2시부터 시작된 수업은 오후 5시를 훌쩍 넘겨서야 끝났다.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건 종소리가 아니라 북소리였다. 학교 관리실의 아저씨는 시계를 보면서 크나큰 북채를 들고 북을 몇 번씩 두드리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 떢볶이 등 한국 간식을 파는 학교 매점과 시종을 알리는 북

*베트남 국민작가 ‘응우옌 주’로 공감을 사다!

베트남의 대표작가로 ‘응우옌 주’(1766~1820)가 있다. 쯔놈(우리의 이두 문자와 비슷함)으로 창작된 그의 금운교전(金雲翹傳)은 베트남 문학의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작품은 3,254행으로 구성된 6·8조 장편 서사시로 중국 청나라때의 통속소설 ‘금운교(金雲翹)’를 쯔놈 문자로 축약, 번역해 운문시로 개작했다.

쯔놈으로 쓰인 자료 중 최대의 것으로,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몇 구절을 외우고 있다. 이 작품에는 유불선 사상이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주제는 부모에 대한 효도 사상, 권선징악과 인과응보 등을 다루고 있다. 하노이 외곽에 자리한 베트남문학관도 한번 가봤는 데 ‘응우옌 주’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국민작가였다.

▲ 베트남 문학관에서 만난 국민작가 ‘응우옌주’

본격적으로 수업하기 전에 응우옌 주 중학교 학생들에게 베트남어 발음으로 ‘한백년 인생살이에, 재주와 명은 어찌 그리 시샘하는지, 변화무쌍한 세상사는 동안 가슴 아픈 일 그 얼마든가’라는 구절을 소개했더니 학생들이 박수를 보냈다. 학교 이름이 들어간 유명 문인의 글을 읽어서였겠으나, 그만큼 베트남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인기가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 생각된다.

▲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학생

* ‘엄마야 누나야’를 가르치다

내가 속한 이 학교에서는 필수외국어로 영어를 배우고, 선택적으로 독일어와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어 수업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한류 특히 K-pop의 열풍에 따라 ‘오빠’, ‘안녕하세요’와 같은 지극히 기본적인 한국어를 비록 쓰지는 못해도 구사할 줄 알았다.

▲ 2천명이 모여 애국조회하는 모습

베트남 학생들에게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와 황순원의 ‘소나기’라는 소설을 가르쳤다. 엄마·누나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강변’은 화자(남동생)에게 평화와 행복을 보장해 주는 안식처이자 가족들과의 단란함을 꿈꾸는 보금자리를 뜻할 수도 있고, 당시 현실 상황에 견주어 볼 때는 일제의 모진 압제를 벗어난 어떤 이상향
일 수도 있다고 설명해줬다. 서울의 한강과 하노이의 홍강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강(강변)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수업집중도는 더해졌다. 이처럼 한국문학 작품 수업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 문화의 유사함에 놀랐다고 말했다.

▲ 엄마야 누나를 가르치는 모습

‘한국(사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돌을 좋아하기에 ‘기획사’가 생각난다, 김치와 짜장면이 생각난다. 서울과 제주도, 남산타워, 신라면, 세종대왕, 한국-베트남 합작 드라마라고 썼다. 베트남 사람과는 달리 쌍꺼풀이 없다는 것을 적기도 했다. 어떤 학생은 ‘유학’이라고 기록했는데 그 이유는 예쁜
언니와 오빠를 만나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외에도 ‘이 작품의 작가인 김소월 외 한국의 다른 문학인을 안다면. 그리고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를 물었다. 1백여 명의 학생 중 14명 정도만 답을 썼는데, 윤동주 시인이라고 쓴 답변이 단연 돋보였다. 한국의 유명한 시인이고, 요절했다고 쓴 학생도 있었다. 특이(?)한 건 윤동주라는 그들의 답변이었다. 시인이 지향했던 ‘사랑’과 ‘부끄러움’이라는 인류 보편의 윤리적 가치와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저항’이라는 실존적 행위가 ‘서시’를 포함한 그의 시에는 묻어있기 때문이리라. 윤동주 시인 외에 고은 시인의 ‘내일의 노래’라는 책 제목까지 기록한 학생도 있었다.

 

베트남의 열정적인 한국사랑

4천 개 이상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 이곳의 경제를 살려주어서인지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사랑은 남달랐다. ‘대한민국’이나 ‘안녕하세요’가 적히거나 태극기가 그려진 티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한국의 인기드라마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이 학교 매점에서는 김밥이 불티나게 팔리고, 학교 앞 간식가게 앞에는 ‘떡볶이’가 인기 만점이었다.

▲ 베트남 학생들의 한국사랑을 알수 있는 모습. 학생이 갖고 있는 한국 아이돌 표지의 연습장, 한국 연예인 이름이 쓰인 책상 위의 낙서, 한글쓰기 연습을 하는 학생 등

수업참관 중 눈에 띈 것은 책상 위에 적힌 ‘성정기 오빠, 리영석 오빠’라는 낙서였다. 많은 여학생들이 ‘오빠’라는 단어는 기본으로 인지했고, 아이돌 중에서는 빅뱅과 엑소, 트와이스 그리고 방탄소년단이 대세였다. 수업시간에 ‘붉은 노을’을 틀어줬더니 최신노래인 ‘뱅뱅뱅’을 듣고 싶다고도 했다. K-pop은 열풍을 넘어서 광풍 수준이었다.

낙서에 등장한 ‘성정기’는 유명인사라 가볍게 인지했는데 ‘리영석’이 문제였다. 처음에 나는 북한청년이 아닌가 오해했다. 카톡 등을 통해 지인들에게 물어본 결과, 이종석으로 판명됐다.

* 잊을 수 없는 K-pop 경연대회

베트남에도 ‘스승의 날’이 있는데, 날짜는 우리와 달리 11월 20일이다. 이날 이 학교는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학급별 장기자랑 경연대회를 열었는데, 예선을 통과한 20여 개 팀이 자웅을 겨뤘다. 놀랍게도 K-pop 팀이 7팀이나 돼 한류 열풍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출국을 며칠 앞둔 11월 말에는 이 학교의 특별실에서 ‘한국의날’ 행사를 진행했다. 인근의 한국문화원에서 대형액자 등을 몇 개 빌려서 세팅을 하고, 그동안의 수업결과물을 전시했다.

▲ 스승의 날 ‘장기자랑하는 학생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K-pop 경연대회였다. 우리나라도 아닌 베트남의 한중학교에서 K-pop 행사가 열린다는 게 가슴 뭉클했다. 학생들은 무대에 등장해 ‘뱅뱅뱅’과 ‘파이어’, ‘치어업’, ‘픽미’ 등을 불렀다. 싸이의 ‘말 춤’도 등장했다. 관객들이 노래가사를 따라 부르는 건 기본이고, 현란한 춤동작에 넋이 나간 표정들이었다. 특히, ‘픽미’를부를 때는 대부분의 학생이 따라서 부를 정도였다.

▲ 스승의날 오찬 기념사진

때마침 ‘오늘도 청춘’이라는 합작 드라마가 베트남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드라마 촬영지인 남산타워와 남이섬 그리고 ‘다낭’은 양국 관광객이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라는 보도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의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한다. 예를 들어 떡볶이 같은 길거리 음식을 맛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서 먹는가 하면, K-pop 또한 듣기를 넘어서서 직접 불러봐야 제격이라고 여긴다는 것이 그 이유다.

 

 

베트남에 ‘교육 한류’ 움트다!

베트남의 중고교에 한국어 교과서로 수업이 진행될 것 같다. 관계당국에서 교재편찬을 준비하고 있고, 하노이의 탕롱중학교를 포함한 4개의 중등학교에서 시범적으로 관련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베트남 정부는 2020년까지 외국어 교육체계 선진화 사업의 하나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전언
이다.

▲ 한글 자모표를 쓰며 한글을 배우고 있는 베트남 학생들

좌우 이데올로기로 혼란스러웠던 1947년, 김구 선생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수필을 통해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남의 것을 모방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서 모범이 된다면, 세계평화가 우리로 말미암아 실현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70년 전, 암울했던 당시 선생의 예언이 베트남에서 서서히 실현되고 있다고 자평한다.

베트남을 강타하는 건 문화의 힘이고, 바꿔 말하면 한류인 셈이다. 선생께서 언급한 대로 한류가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어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편, 지난 6월 25일 서울 은평구 선정중학교 강당에서 한국 서울의 선정중과 베트남 하노이의 탕롱중과의 MOU가 체결됐다. 두 학교는 2년 동안 상호교류를 하면서 유대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이래저래 베트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 한국 선정중학교와 베트남 탕롱중학교가 지난 6월 25일 한국 선정중학교에서 MOU체결식을 가졌다.
▲ 응우옌주 중학교 교감선생님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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