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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록, 베트남의 자존심 '디엔비엔푸'②...격전지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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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록, 베트남의 자존심 '디엔비엔푸'②...격전지에 서서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17.05.0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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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비엔푸 탐방으로 얻은 것 몇 가지
▲ A1 고지

베트남 북서부에 있는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하노이에서 서쪽으로 300km거리, 라오스의 국경 근처에 자리해 변방에 있는 소박한 도시지만, 이곳은 절대적 열세 속에서 극적으로 프랑스를 꺾고 자존심을 지킨 베트남의 역사 현장이다. 격전지 현장 디엔비엔푸 탐방으로 얻은 것 몇 가지를 소개한다.

▲ A1 고지의 야생화

격전지에 서서

수십 년 동안 베트남을 지배하다 태평양전쟁 때 물러났던 프랑스군이 1946년 다시 돌아왔다. 베트남 민족전선을 이끌던 호찌민은 프랑스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이를 프랑스가 거부하면서 8년간에 걸쳐 전쟁이 시작됐는데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게 그 유명한 디엔비엔푸 전투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호치민의 월맹을 지원했다. 프랑스는 보급 루트가 인근의 라오스를 관통하는 것에 착안, 라오스 인근의 디엔비엔푸 지역에 대규모 공수부대를 낙하시켜 이곳을 장악한 다음 월맹의 목을 죄겠다는 것이었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프랑스 정예 병력이 하늘을 덮는 낙하산으로 디엔비엔푸에 내렸고, 월맹군은 일단 후퇴했다.

▲ 프랑스가 만든 철제다리

하지만 월맹군은 기가 질린 것도, 마냥 후퇴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차근차근 병력을 집중시켰다. 맨몸으로 포탄을 지고, 자전거로 박격포를 날랐다. 사람의 몸을 이어 늪의 다리를 만들면서 프랑스군에 대한 포위망을 소리 없이 완성시켜 갔다.

월맹의 군수물자와 식량, 탄약은 베트남 주민에게 맡겨졌다. 하노이에서 출발한 주민들은 하루에 20km를 걸으며 식량을 운반했다. 산악지형에서는 마소와 자전거를 이용해 군수물자를 지원했다고 한다.

▲ 식량 운반하는 주민들 재현한 모형

이렇게 준비한 끝에 1954년 3월 13일 밤, 지압 장군이 이끄는 월맹군이 디엔비엔푸에 주둔한 프랑스군에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전투가 시작됐다.

이 해의 몬순은 예년보다 빨리 시작돼 3월 하순부터 호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로 인해 프랑스군의 참호에는 물이 차기 시작했고, 물이 찬 참호에서 적의 포화를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 보급항공기는 두껍고 낮은 비구름 때문에 낮게 날 수밖에 없었고, 산에 숨겨져 있던 월맹군의 대공포에 의해 수많은 항공기가 격추됐다.

▲ 지압 장군 흉상

역사적인 인물, 호치민

집중호우가 계속되자 프랑스의 항공기를 이용한 공중 공수작전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식량과 의약품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강이 범람하면서 활주로를 따라 형성된 방어기지는 거의 물에 잠겨 버렸다. 심한 굶주림과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고지대에서 내려퍼붓는 월맹군의 포격은 프랑스 포병대를 침묵시켰다. 수없이 죽어 나가면서도 월맹군은 디엔비엔푸를 죄어 들어갔고, 마침내 1954년 5월 7일 프랑스군은 전면 항복한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전투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디엔비엔푸 전투의 끝이었다.

호치민은 프랑스 지배를 물리치고 이후 미국을 패퇴시킴으로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 지금도 베트남의 각급 학교 건물에는 호치민이 어린이를 다독거리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어록이 적혀 있고, 학교의 대강당에는 호치민의 흉상이, 교실에는 초상화가 정면에 위치해 있다.

▲ 전승기념박물관

A1 고지에서 가까운 무명용사의 묘지를 찾았다. 입구의 광장에서 신혼부부가 면사포를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게 이채로웠다.

묘지 주위를 가볍게 둘러본 우리는 바로 앞에 자리한 ‘전승기념박물관’으로 이동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이방인을 맞이하는 매표원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박물관에는 1954년 봄, 베트남 군인들과 국민들이 벌인 치열했던 전투와 관련한 방대한 양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실내 및 야외에서도 전시물을 선보였다.

▲ 박물관 표 파는 아가씨

베트남의 강인한 여성들

어느새 점심 때가 가까워졌다. 더위가 심했고, 잠자리가 불편했던 탓인지 다리쉼 할 장소를 찾아 나섰다. 거리에 자가용 차량은 많이 없었고, 오토바이가 쉼 없이 오갔다. 매연 때문에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그러다가 어떤 젊은 아주머니가 자전거 뒤편에 무거운 짐을 올려 놓고 힘겹게 자전거를 타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널따란 양철판 위에 자신의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올렸기에 자전거 앞부분이 들릴 정도였다. 이 상태에서 집에 빨리 가려고 그랬는지 자전거를 타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매번 실패했다.

▲ 자신보다 무거운 짐을 싣고 가는 아주머니

나는 두 손을 써서 뒤쪽의 짐을 잡아주면서 자전거에 탑승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주었다. 이 모습을 본 한 남자가 오토바이에서 내려 자전거 앞부분에 무거운 블록을 얹어 주었다. 하지만 뒤쪽 짐이 워낙 무거워서 연신 발버둥을 치다가 천신만고 끝에 자전거에 탑승했다.  ‘신깜언’을 크게 말하면서 페달을 밟고 가는 베트남의 젊은 아주머니를 보면서 강인한 여성상을 각인할 수 있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하노이에서 살펴본 베트남 남성들 가운데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가장의 역할을 아내가 책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신문과 TV를 보거나 동네카페 등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소일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참고로, 베트남 여성은 수세기 동안 유교윤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기에 내면적으로는 도덕적 삶을 실천하면서도 외면적으로는 자존의식을 가지고 가정을 위해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 시내 중심가의 상징물

또한 베트남의 민족성 속에 여성의 높은 지위를 인정하는 공통적인 사고가 잠재하고 있는데다, 농경중심사회에서 노동력이 중요시되고 여성의 재산권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여성의 경제적 역할이 증대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을 꼽을 수 있겠다. 즉, 베트남의 엄마는 소극적(?)인 삶을 사는 남편과는 달리, ‘농’을 메고 다니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아주머니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했으나,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 같은 게 마음속을 휘젓고 다녔다.

▲ A1 카페 상징물

우리는 인근의 A1카페를 찾았다. 몇 그루의 고목 아래에 자리한 카페에는 그늘진 곳이 많아 좋았다. 카페 청년은 친절했다. 해바라기 씨를 듬뿍 가져와 무료함을 달래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가 무거운 짐을 싣고서 자기 집으로 잘 갔을 거라는 얘기도 같이 나눴다. 간식과 음료는 불어오는 바람처럼 맛있고 시원했다.

 

어떤 가치관이 필요한가?

디엔비엔푸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사탕수수를 엄청나게 많이 재배한다는 것, 드넓은 평원에서 나는 쌀이 유명하다는 것, A1카페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과 커피의 달달함, A1고지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야생화 등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억척같이 살면서 가장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던 베트남의 그 아주머니의 삶을 나는 기억한다.

▲ A1 카페

토요일 저녁에 하노이에서 출발한 후 디엔비엔푸 격전지 몇 군데를 견학한 다음, 월요일 새벽에 다시 하노이로 돌아온 우리는 슬리핑 버스를 무려 왕복 24시간이나 탔다.

가끔씩 만나는 지인은 왜 당신이 그렇게 먼, 당신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가서 고생만 하고 왔느냐며 핀잔을 주지만, 그때마다 허허 하고 웃으면서 받아넘긴다. 역사교사의 권유에 따라 가본 곳이지만 후회하지는 않으리라.

▲ 디엔비엔푸의 사탕수수밭

디엔비엔푸 전투 후로 월맹에 의해 베트남은 통일되고 공산정권이 세워졌다. 하지만 도이모이(doimoi)라는 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자본을 받아들이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어서 디엔비엔푸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하리라.

▲ 베트남의 ‘디엔비엔푸’를 소개한 최홍길은 현재 서울 선정고 교사이다. 지난해 9~11월 3개월간 베트남 하노이의 ‘응우옌 주’ 중학교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하면서 베트남 대표 수학여행지 ‘디엔비엔푸’를 다녀왔다. 저서로는 수필집 ‘사랑은 많은데 참사랑이 없다’를 비롯해 ‘한국단편소설 베스트37’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사진은 기념탑 앞에서 찍은 사진과 방면록에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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