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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록, 베트남의 자존심 '디엔비엔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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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록, 베트남의 자존심 '디엔비엔푸'①
  •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 승인 2017.05.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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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비엔푸 탐방으로 얻은 것 몇 가지
▲ 기념탑에서 바라본 평야

[투어코리아] 우리에게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구를 무찌른 명량대첩이 있다면, 베트남엔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험한 산악 지형과 끈기를 무기삼아 절대 강자 ‘프랑스’를 꺾은 승리의 기록이 있다. 그 중심지는 바로 베트남 북서부에 있는 ‘디엔비엔푸(Dien Bien Phu)’다.

하노이에서 서쪽으로 300km거리, 라오스의 국경 근처에 자리해 변방에 속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겐 자존심을 지킨 역사의 현장이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다문화 대상국가와의 교사교류’의 일환으로 3개월(2016년 9~11월)간 베트남 ‘응우옌 주’ 중학교에 파견 근무 중 그곳 역사 선생의 추천으로 ‘디엔비엔푸’에 다녀왔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자주 가지 않지만, 베트남 학생들의 주요 체험학습장이자 베트남의 자존심이 된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 디엔비에푸 역사 현장 견학 후 기념촬영하는 학생들

우리나라 관광객이 베트남의 디엔비엔푸(Dien Bien Phu)를 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그곳을 답사할 목적이 있거나, 접경 국가인 라오스를 건너가려고 잠시 머무르기에 적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언덕(해발 800~1,000m)으로 둘러싸인 인구 10만 정도의 이 도시는 세계사를 배울 때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 1954년 5월, 프랑스 식민지군과 베트남군과의 최후격전지인 이곳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후퇴하였던 것이다. 국민들의 끈기로 강대국을 몰아낸 전투이기에 인근의 학생들이 체험학습지로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디엔비엔푸를 가기 위해 지난 2016년 11월 19일 하노이 호안끼엠 주변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시내에 자리한 미딩 터미널의 위치를 제대로 모르기에 버스에 앉은 젊은 여성에게 어쭙잖은 영어로 위치를 물었다.

여성은 하노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녀는 매우 친절했다. 버스에 내려서도 안내원에게 여러 가지를 물은 끝에 표를 사는 창구는 물론 타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주몽’이라는 드라마에 심취해서인지 주인공을 잘 알고 있었고, 주인공의 아들의 이름을 ‘대한민국만세’라고까지 기억했다. 한류팬이었다.

▲ 디엔비엔푸 버스터미널

느리게 천천히 가는 슬리핑 버스

밤 7시, 몸을 뉘어 잠을 잘 수 있는 슬리핑 버스를 탔다. 토요일이라 그랬는지 버스 안은 만원이었다. 버스 2층 뒤편 구석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자리는 비좁았고, 오래된 버스라서 삐걱거리기도 했다. 게다가 짐들도 많았다. 장장 12시간 정도를 이 버스 안에서 보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있다니.

버스는 느리게 움직였다. 도중 2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하염없이 그러나 천천히 이동했다. 눈을 떠서 차창 밖을 응시했으나 사방은 그저 어두울 뿐이었다. 억지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언제 이런 버스를 또 타겠는가,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참고 가야지, 이런 생각을 내내 했다.

베트남의 슬리핑 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객들은 특히 외국인들은 요금 가운데 식비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우리 버스 일행도 밤 9시를 약간 넘기자 저녁을 먹으러 휴게소에 들어갔다. 이미 버스와 휴게소 식당과의 합의가 돼 있기에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된다. 만일 배부른 여행객이라면 차장에게 말해 밥 대신에 음료수 몇 개를 그냥 마시면 된다. 가는 도중 차장의 도움을 받아 목적지에 내리는 승객들도 보였다.

참고로, 베트남의 버스에는 차장이 동승해 요금을 받는 등승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80년대 우리의 모습과 흡사했다. 게다가 하노이(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내버스의 차장은 요금계산은 기본이고, 연장자가 올라오면 우선적으로 자리를 잡아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아침 6시 무렵, 눈을 떴는데 주변이 어둠 속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접근한 것이다. 하노이 서쪽 300km 지점에 자리한 디엔비엔푸. 하지만 도시는 조용했고, 사위는 고즈넉했다. 터미널 부근에 도착했을 때 차장은 버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잠에서 깨어나라고 멘트를 날렸다.

▲ 커피숍에서 차 마시며 한담을 즐기는 디엔비에푸 사람들

쌀국수도 먹고, 충전도 하고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한 후 역사선생님과 나는 어디로 갈까 고민해야만 했다. 이곳에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그저 어제 오후에 웹서핑한 자료 몇 개를 적은 메모지가 전부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출출하기에 우선 식당을 찾았다. 마침 비교적 깔끔해 보이는 쌀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젊고 친절했다. ‘퍼보(pho bo)’라면서 쌀국수 2개를 시켰다. 주문과 동시에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콘센트 있을 곳을 가리켰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1시간 가까이 식
당에 앉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관광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렀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전쟁기념탑이 가까이 있음을 알았다. 걸어서 20분 정도면 족했다. 우리는 시내 구경을 하면서 탑에 오르기로 합의했다.

이 지역은 열대 몬순 기후구에 속하기에 날씨는 아침부터 더웠다.

▲ 기념탑

수백 개의 계단을 올라가다가 두 번 이상 쉬어야 했다. 아침 일찍부터 기념탑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가끔 보였다. 높이 12.6m의 승전 기념상은 군인과 소수민족 타이(Thai)족 소녀가 승리를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결전결승(決戰決勝, 뀌엣찌엔 뀌엣탕, 전쟁을 결심하면 승리를 결심한다)이라고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단체로 올라와 설명을 듣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기념상 주변을 오가며 시내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한적한 소도시의 모습이었다.

저 멀리 평야지대도 조망이 가능했다. 디엔비엔푸의 쌀은 다른 지역보다 맛이 좋아서 하노이에 사는 부유층 사람들이 이곳의 쌀을 주문해서 먹는다고도 전해 들었다. 더웠지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기분은 삽상했다. 쌀 농사를 짓는 논은 의외로 넓었다.

▲ 벌꿀 파는 소수민족 아주머니

다시 계단을 내려와 A1 고지를 찾았다. 길을 걸어가는 몇 사람에게 묻자 웃으면서 친절히 답해 주었다. 도중 길가에서 벌꿀을 파는 소수민족 아주머니도 눈에 들어왔다. 좌판도 없었고, 호객행위도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후, 커피숍에 들어가 한담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A1 고지에서 사진을 찍었다. 전차 주위에는 타이족으로 보이는 소수민족의 3쌍의 부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격전지로 갔다. 

A-1 언덕 요새, 수십일 동안 점령과 재탈환이 이어졌던 곳. 베트남 군대의 사기도 떨어졌다. 참호전의 어려움, 죽음의 공포, 배고픔으로 사병들은 낙담했다. 이때 터널을 팠다. 그리고 요새 밑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프랑스군은 퇴각했다. 땅굴 폭파로 분화구 같은 구덩이가 생겼다.

▲ 소수민족 부부 3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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