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을 기리는 ‘정월대보름’처럼 말레이시아에도 보름달이 뜨는 때에 맞춰 열리는 축제가 있다. 바로 ‘타이푸삼(Thaipusam)’이다. ‘타이푸삼’은 신성한 한 달을 의미하는 ‘타이’와 보름달이 뜨는 때를 의미하는 ‘푸삼’의 합성어로, '신성한 보름달'을 뜻한다. 말레이시판 보름달 축제인 것.
그러나 묵을 것을 태우고 액을 막기 위해 불을 붙이는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지신밟기, 달맞이 등의 행사를 펼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타이푸삼은 육체의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1년 동안 지었던 죄를 신 앞에서 사죄하고 축복을 비는 일종의 ‘신성한 고해성사’다.
타이푸삼은 매년 1월 말경부터 2월 초순까지 전국적인 규모로 열리는 힌두교도 축제로, 올해에는 2월 9일부터 사흘에 거쳐 열린다. 축제에선 힌두의 신 ‘무루간(Murugan)’을 숭배하는 의식이 진행된다.
축제는 첫째 날 사원과 신상(神像)을 꽃으로 꾸미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틀째에는 각 지역의 사원까지 꽃과 신상으로 장식한 마차를 끌고 신자들이 그 뒤를 따르는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수도 쿠알라 룸푸르(Kuala Lumpur)의 경우 시 외각에 위치한 힌두교 성지 바투 동굴(Batu Caves)까지 15km에 이르는 행렬이 펼쳐져 진풍경을 연출한다. 이때 5톤에 이르는 은으로 제작된 수레가 무루간 신의 초상을 싣고 바투 동굴로 향한다. 그 뒤를 따르는 신도 수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하며, 관광객들과 축제 참가자들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어머 어마 하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셋째 날에 펼쳐지는 ‘고행 의식’이다. 이날은 바투 동굴 근처로 힌두교 신도들과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수백 명에 이르는 지원자들이 고행을 몸소 실행하는 의식이 진행된다. 길게는 1m에 이르는 가느다란 쇠꼬챙이를 혀, 뺨 등에 찔러 관통시키는가 하면 날카로운 갈고리로 등과 가슴의 피부에 피어싱 하는 것. 다소 기이해 보이는 데, 놀랍게도 그 누구도 피를 흘리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힌두교도들은 ‘이것이 바로 신의 가호’라고 믿는다고.
고행을 자청한 신도들이 ‘카바디(Kavadi)’라 불리는 화려한 장식의 등짐을 지고 동굴에 이르는 272개의 계단을 오르면 축제는 절정에 달한다.
카바디는 삶이 주어진 짐을 의미하며 계단을 오르는 동안의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참회와 속죄라는 타이푸삼의 참 뜻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군중들은 이 때 신성한 본질을 의미하는 타밀어인 ‘벨(Vel)’을 외치는데, 그 외침 속에서 고행자들은 점점 황홀경에 빠져든다고 한다. 동시에 군중들은 코코넛 열매를 깨뜨리는데, 코코넛 열매는 사람의 머리를 의미하며, 이는 내재되어 있는 참자아를 발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타이푸삼 축제는 이방인에게 독특한 힌두교만의 문화를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때문에 매년 이를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취재진과 여행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편, 타이푸삼은 인도계 민족 중 하나인 타밀(Tamil)족이 말레이시아에 유입되기 시작한 1892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