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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방콕, 7개월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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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방콕, 7개월의 기다림
  • 유의민 객원기자
  • 승인 2016.11.18 0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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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을 향한 첫 걸음

올해 1월에 다녀왔던 이탈리아 여행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한 달 후인 2월. 나만 보고 다녔던 바깥세상을 우리 가족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음으로 미루기 일쑤. 미루고 미뤘던 것이 쌓이고 쌓여 드디어 분출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화산이 되었다. 덕분에 불도저처럼 거침없이 방콕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D-Day는 9월! 추석 연휴였다. 한창 겨울이었던 2월에 봄도 여름도 아닌 두 계절이나 지나야 찾아오는 가을인 9월이라고 생각하니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침 조회 시간의 교장선생님 말씀처럼 지루할 것만 같던 7개월은 금세 지나갔다. 어느새 우리 가족은 캐리어에 짐을 챙기고 있었고, 그다음 날. 가는 여름과 오는 가을 사이의 시원 서늘한 아침 공기로 얼굴 마사지를 받으며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엄마, 여기가 인천국제공항이야!

▲ 의외로 한산했던 인천공항의 정오

"이번 추석 연휴, 역대 공항 최대 이용객 수를 갱신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이었다. 우리의 출발일은 정확히 연휴 하루 전날이었지만 날이 날이니 만큼 뉴스를 굳게 믿고, 여유 있고 원활한 출국을 위해 엄마와 나는 비행기 탑승 5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동생은 학교 기숙사에서 출발해서 조금 늦기로 되어 있었다.

동생을 기다리며 엄마와 공항 데이트를 했다. 늘 여자 친구의 차지였던 내 팔은 이날만큼은 엄마의 것이었다. 공항이 처음인 엄마를 위해 공항 구석구석 뭘 하는 곳인지 알려주고, 공항에 오면 출국 전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열혈 강의를 했다.

강의를 하는 내 목소리는 많이 업되어 있었다. 엄마에게도 드디어 해외여행을 전도하는듯한 뿌듯함과 설렘이 나를 열혈 강사로 만들었다. 엄마도 열혈 학생이었다.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면서도 내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공항 소개 강의에 푹 빠진 나머지 동생이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동생도 함께 일찍 왔으면 내 열강을 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스쳐갔다. 어쩌면 엄마보다는 앞으로 나갈 기회가 더 많은 동생에게 더 필요한 강의였는데...

동생이 도착하고서 완전체가 된 우리 가족은 엄마와 동생을 위해 자동출입국심사를 등록하고 해외 로밍 등 출국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했다. 공항은 처음보다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여전히 한산한 편이었다. 뉴스에 제대로 속았다. 누가 길을 터 놓았는지 우리는 한 번도 줄을 서지 않고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드디어 7개월 동안 기다렸던 여행의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출국 수속이라는 바깥세상으로 가기 위한 통로를 지나갔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곳, 면세점

▲ 무빙워크를 따라 앞만 보고 걸었던 면세점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쇼핑이다. 여행지에서의 쇼핑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은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면 펼쳐져있는 신상 로드 스트리트, 면세점 구경에 잔뜩 기대가 실려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뜩이나 살면서 처음 방문해보는 엄마와 동생은 양쪽으로 열차처럼 줄지어 늘어선 가게들을 보고는 어디부터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엄마, 시간 많~으니까 가까운 데부터 가요!"
바로 앞에 가방가게가 있었다. 엄마는 거침없이 가게로 돌진해 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빠르게 나왔다.

엄마는 면세점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흔히들 면세점에서 알뜰 구매를 했다는 말에 엄청나게 파격적인 가격을 생각을 한 듯했다. 빡빡한 살림살이를 도맡아 책임지느라 시장이나 마트 물가에는 빠삭해도, 자신을 꾸미는 일은 뒷전이 된 지 이미 오래되어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들의 물가에는 어두워 생긴 오해였다.

물론 나는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첫 가족여행인 만큼, 못해도 엄마가 원하는 것 하나쯤은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여유돈도 준비해두었다. 그래서 나도 면세점 쇼핑을 기대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선물을 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엄마는 극구 나를 말렸다. 평소 고집이 있는 엄마를 잘 알고 있지만 이번엔 나도 지기 싫어 고집을 부려봤지만 돈을 쓰는데 있어서 자식 이기는 엄마가 바로 우리 엄마였다. 나는 엄마의 성화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 이후로는 다른 어떤 가게도 들어가지 않았다. 곧장 탑승 게이트로 걸어갔다. 한편으로는 이런 엄마의 모습이 안타까웠고 이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게 정말 미안했다. 자식으로서 좀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더 노력해서 엄마가 그리고 동생도 마음껏 면세점을 구경하고 다닐 수 있도록 해드려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며 게이트에서 탑승을 기다렸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스카이라운지

▲ 세계 최고(高) 스카이라운지에서의 만찬!

가만 보면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식사하는 걸 참 좋아한다. 몰론 나도 그렇다. 아마도 대부분의 이유는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경치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가 땅에서 발을 뗀 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 기내에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 선잠이 들어있던 우리는 코에서부터 퍼져오는 맛있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눈을 떴다. 각자 식사를 하나씩 받고 식사 시작!

기내식이 처음인 엄마와 동생도 다행히 음식이 입에 맞는 듯했다. 밥알 한톨 남기지 않고 설거지를 해버렸다. 비록 바깥의 경치는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를 하는 것처럼, 평소 집에서 밥을 먹을 때와는 달리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바가지에 대한 오해가 낳은 편견

▲ 수완나 폼 공항의 퍼블릭 택시 정류장

인터넷에서 태국 여행 시 주의할 점을 검색하면 단연 많이 나오는 것 중 하나는 교통수단의 바가지요금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절대 너네들 뜻대로 되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각오로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한 팁들을 많이 공부했다. 그러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태국인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이 생겼던 것 같다.

약 5시간의 비행 끝에 태국 방콕 수완나 폼 공항에 무사히 발을 붙였다. 짐을 찾고 입국 수속 후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정말 태국에 온 것이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다. 이것이 택시기사와 나의 제 1라운드. 처음부터 경계심이 있었기에 난 전투적인 자세로 다가가서 우리가 가야 할 숙소를 알려주고 인터넷의 팁과 여행책에 나와 있는 대로 미터기 사용 여부를 확인했다.

"미터 택시?"
택시기사가 아주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오케이!"
나는 살짝 기분이 나빴다.
'왜 웃지? 내가 우습나?'

사실 나는 흔쾌히 오케이라고 할 줄 몰랐다. 어느 정도의 실랑이를 하게 될 걸로 예상을 했다. 그래서 조금 퉁명스러우면서도 강하게 얘기를 했다. 기사는 아주 쿨하게 살살 웃으면서 '오케이'라고 했다. 일단 태우고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괜한 의심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차창 밖으로는 방콕의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졌지만 나는 미터기와 기사의 행동에만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행동을 하면 바로 하차할 생각이었다.

 

삼사십분 정도 달렸을까? 드디어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다른 꿍꿍이가 있지는 않았다. 정상적으로 미터기를 사용해서 도착했다. 요금을 내기 위해 태국 돈을 모아둔 봉투를 열었다. 마침 잔돈이 딱 맞게 떨어져서 잔돈과 함께 지불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나를 붙잡고 돈을 더 달라고 했다. 나는 미터기 금액을 가리키며 정확히 지불했음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계속 더 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했다. 나는 결국 다 와서 바가지를 씌우는구나 생각했다.

'아~ 짜증나, 에라 모르겠다. 배째라 버텨야지'
나는 더 이상 돈이 없다며 버텼다. 택시기사의 연이은 몇 번의 요구에도 계속 버티자 한숨 섞인 웃음을 짓더니 알았다며 손짓으로 내려도 좋다고 했다. 나는 승리의 기쁨을 안고, 차가운 표정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기사는 우리 가족에게 활짝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바가지를 쓰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마지막 기사의 웃음이 뭔가 꺼림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을 상황은 아닌데... 원래 바가지 씌울 때 다 저러나? 싶었다.

숙소에 들어와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택시를 탈 때마다 이래야 한다면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가방을 정리하면서 남아 있는 돈을 확인했다. 뭔가 이상했다. 계산대로라면 택시비를 낼 때 소진했던 잔돈들의 액수가 내가 생각했던 금액보다 적었다. 다시 한번 계산해보아도 분명 적었다. 그렇다면 나는 택시비를 덜 지불한 셈이었다.

'아!'
그제야 택시기사가 왜 나를 붙잡았는지 이해가 됐다. 기사는 정당한 요구를 한 것이고 잔돈을 잘못 계산한 내가 막무가내로 버틴 몰상식한 외국인 손님이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통은 팁을 주는 의미에서 잔돈을 절상해서 준다고들 하는데 나는 팁은커녕 돈을 덜 냈으니... 마지막에 활짝 웃는 기사의 모습이 떠오르는 동시에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기사님에게 죄송했다.

바가지 피하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태국 사람들은, 특히 택시기사들은 모두가 그럴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 때문에 본의 아니게 부끄러운 추억을 하나 만들고 말았다. 그런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우리 가족을 웃음으로 보내주었던 기사님이 내심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태국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개중에 몇몇 적절하지 못한 꼼수를 쓰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한국에도 있는데... 내가 얼마나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느끼고 반성했다.

대신 다행인 건 앞으로 있을 여행에 택시를 타는 데 거부감이 줄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조심은 해야겠지만 너무 혈안이 되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이제 차장 밖 풍경을 즐기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사님!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อัศวิน! ผมรู้สึกเสียใจและขอขอบคุ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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