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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여행 하이라이트 '도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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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여행 하이라이트 '도쇼구'
  • 유경훈·김응구 기자
  • 승인 2016.03.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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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코리아] 조선통신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조선시대 한류 종착점 '도쇼구'다.

조선시대 한류 종착점 '도쇼구'

여행 셋째날 오전 10시쯤 도치기((栃木)현 닛코(日光)시의 ‘도쇼구(東照宮·동조궁)’에 도착했다. 이곳은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모신 신사다. 도쿠가와는 원래 1616년 시즈오카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이곳으로 시신을 옮겨와 안치한 후 신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에도막부 3대 장군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일본 전역에서 1만5000명의 장인(匠人)과 45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이에야스 사망 30년 후인 1636년에 화려하게 변신시켜 놓았다.

▲ 도치기현 닛코시의 도쇼구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에도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묻혀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도쇼구 400주년 기념 해다. 그런 만큼 여러 행사들이 준비돼 있다.

 

도쇼구의 입구를 지나면 5층탑인 ‘고주노토(五重塔)’와 만난다. 1650년 일본의 영주(領主)가 봉납(捧納)한 것이라는데, 1815년 5층에 벼락이 떨어져 피해를 본적이 있다고 한다.

도쇼구는 카미사마(神様)와 호토케사마(ほとけ様)가 공존하는곳이다. 즉, 신과 부처를 함께 모셔놓은 궁인 것이다. 이런 곳은 일본에서 흔치 않다고 한다.

▲ 도쇼구의 입구를 지나면 5층탑인 ‘고주노토(五重塔)’와 만난다

 

정문을 통과하면 ‘신큐사(神廐舍)’라 불리는 마구간과 만난다. 도쇼구 내의 모든 건축물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말을 병(病)으로부터 지킨다는 의미에서 건물 위쪽에 원숭이 여덟 마리를 조각해 놓았는데, 그 모습이 혼자 여행을 떠나 험난한 파도와 맞서고, 아이를 낳는 등의 인간사(人間事)를 표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중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모습의 조각상이 가장 유명하다.

▲ 정문을 통과하면 ‘신큐사(神廐舍)’라 불리는 마구간과 만난다. 원숭이 여덟 마리가 조각돼 있는데,원숭이가 여행을 떠나 험난한 파도와 맞서고, 아이를 낳는 등의 인간사(人間事)를 표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마구간을 지나면 안쪽에 신사 건물이 보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금박으로 장식해 무척 화려하다.

도쇼구의 압권은 ‘요메이몬(陽明門)’이다. 일곱 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으며, 400여 개의 조각과 문을 받치고 있는 12개의 둥근 기둥은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요메이몬을 찾은 날 하필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아쉽게도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도쇼구에는 조선에서 가져온 종(鐘)과 네덜란드에서 기증한 큰촛대가 있다. 조선종은 이에미쓰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쯔나(德川家綱)의 생일 축하 기념으로 조선통신사가 전해온 것이란다.

 

삼나무 길을 따라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영묘(靈廟)가 있다. 문 입구에 금속을 먹는다는 전설 속의 동물 ‘바쿠’가 앉아있다.

영묘 앞엔 삼구족(三具足)이 자리하고 있다. 삼구족은 불전(佛前)에 차리는 세 가지 법구(法具:꽃병, 향로, 촛대)를 말한다. 도쇼구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 상상 속 동물 '바쿠'가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묘가 있는 문 입구를 지키고 있다.

 

조선통신사 숙소 ‘이마이치’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닛코 근처의 이마이치(今市)다. 그곳에 도착하니 니코조선통신사연구회 야나기하라 가츠오키(柳原一興)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야나기하라 씨에 따르면 이 지역은 원래 보리밭이었다. 이를 임시 숙소 터로 만든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이곳에 100개가 넘는 조선통신사 숙소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들은 도쇼구로 가기 전과 돌아가는 날, 이곳에서 묵었다. 한 번 오고가면 당시 돈으로 1만냥, 현재 가치로 약 100억 원 이상이 들었단다.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니코조선통신사연구회 야나기하라 가츠오키 씨는 일본의 민간단체와 닛코시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2007년 ‘조선통신사 기념비’를 세웠다.

 

조선통신사들이 무엇을 했는지, 또 어떤 요리를 먹었는지는 남아있는 기록으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숙소의 형태는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다.

야나기하라 씨는 그의 스승과 쓰시마 여행을 하면서 조선통신사와의 연을 맺었다. 이후 연구 활동 중 2002년 도치기현 민간단체에서 조선통신사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서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조선통신사 기념비’는 그가 모금한 기금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기념비를 세우는데 500만 엔이 필요했지만 열심히 모금운동을 벌인 결과 700만 엔을 모을 수 있었다.

기념비는 닛코시에서 기증한 돌로 2007년 세워졌다.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한 덕에 5년 전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기념비는 꿈쩍하지 않았다 한다.

야나기하라 씨는 “현재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한국·일본 유물들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말했다.

▲ 도치기현 닛코시의 도쇼구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조선시대 일본에 보낸 공식 외교 사절단이다. 달리 말해 조선의 국왕이 일본 막부(幕府)시대의 장군(將軍)에게 보낸 사신(使臣)이다. 거꾸로 일본 막부 장군이 조선 국왕에게 보낸 사절단은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 불렀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열두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향했다. 한 번 출발할 때마다 정사(正使), 부사(副使), 종사관(從事館) 등 400~500명이 움직이는 대(大)사절단이었다.

▲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 부산문화재단 제공

당시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일본의 수도 에도까지 약 3000㎞를 오가는 동안 일본 백성들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각 계층에 경제, 문화적으로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부산문화재단과 일본의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緣地連絡協議會)는 3월 중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 111건 333점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한다.

두 기관은 지난 1월 29일 일본 쓰시마(對馬島·대마도)에서 ‘한·일 공동 등재 신청서 조인식’을 가졌다. 이번 유네스코 등재 신청은 2012년 부산문화재단이 연지연락협의회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번에 등재 신청하는 유물들은 1607~1811년까지 조선통신사의 외교·문화 교류에 관한 기록들(한국 63건 124점, 일본 48건 209점)이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는 내년 7월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도치기현 닛코시의 도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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