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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여행' 잊혀진 추억과 풍경의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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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여행' 잊혀진 추억과 풍경의 그리움
  • 오재랑 기자
  • 승인 2016.03.11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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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즐거워지는 대구(大邱)
▲ 3.1운동 만세길

[투어코리아] 대구에는 재미있는 골목이 참 많다. 그 골목들을 걷다 보면 근현대사가 온전히 남아 있고,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들어서면, 그의 주옥같은 노래가 정겹다.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를 거닐다보면 예술인들이 술잔을 기울였던 추억의 집들을 만나볼 수 있다. 팔공산은 힐링길이다.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렸던 서문시장은 향수 자극하는 먹거리가 풍성하다. 살랑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기대어 대구로 도시여행을 떠나본다.

▲ 김광석 길

시간을 거스르는 골목투어

대구 여행에서 꼭 챙겨봐야 할 투어 코스다. 대구는 6.25 전쟁 당시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적어 골목 곳곳에 근대 건축물이나 거리들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돼 있어 볼게 많다. 대구 도심 골목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코스는 총 5개, 이중 가장 인기 있는 투어로드는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이다. 길이가 1.64㎞로 긴 편은 아니지만 볼게 많다 보니 온전히 돌아보려면 2시간 정도 투자해야 한다.

▲ 선교사주택

‘근대문화골목’ 투어의 출발점은 기독교와 서양의학이 싹튼 ‘대구 몽마르트르 언덕’ 동산의 선교사 주택이다. 동산은 (봄~여름)푸른 담쟁이덩굴로 치장한 100년 이상 된 건물이 많아 ‘청라 언덕’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계명대 동산병원이 있는 자리다.

동산에는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고풍스러운 건물인 스윗즈(Switzer.현 선교박물관) 주택과 챔니스(Chamness. 현 의료박물관) 주택, 블레어(Blair.현 교육역사박물관) 주택이 장장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윗즈 주택은 1910년 미국인 선교사 스윗즈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3.1운동 만세길, 계산성당

3·1만세운동길은 제일교회 신관 왼편의 3·1운동 계단에서부터 동산박물관을 지나 이어진 길이다. 이 길은 3·1 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대구고보(현 경북고) 학생들이 도심으로 진출하고자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다녔던 솔밭길이다. 계단 길 옆으로 3·1만세운동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 스윗즈 주택

영남지역 최초 고딕양식 성당인 계산성당은 1899년 한옥 기와집으로 지어졌지만 1901년 화재로 전소돼 1902년 재건한 것이다. 계산성당은 고딕 양식의 우뚝 솟은 쌍 탑이 특징인데, 고풍스러운 내부와 건축물의 아름다움 덕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유명인사들이 결혼식 장소로 애용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50m쯤 걸어가다 보면 나란히 붙어 있는 한옥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이상화 시인과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민족운동가 서상돈 선생이 살던 고택(古宅)이다. 이상화 시인 자택 앞에서는 매년 5∼6월과 9∼10월에 거리 연극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상연한다.

▲ 이상화 고택

제일교회는 대구·경북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기독교회로, 동산병원전신인 제중원이 이곳에서 설립돼 대구에 서양의학을 전수했다.

3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 약령시(藥令市)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약령시의 한의학과 한약재를 소개하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 옆 골목에는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의 무대였던 한옥이 숨어있다. 약령시의 끝은 진골목으로 통한다. 진골목은 경상도 사람들이 ‘길다’를 ‘질다’로 발음하는 것처럼 ‘긴골목’의 사투리다.

▲ 제일교회

이 밖에도 근대문화골목에는 일제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옛 조선식산은행(현 대구근대역사관), 대구 화교 메카인 대구화교협회와 화교소학교, 삼성그룹 모태인 삼성상회가 있던 터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살던 고택을 찾아볼 수 있다. 대구 달성서씨 문중 서원인 옛 구암서원은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할 수 있다.

근대문화골목을 제대로 체험하려면 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해설사와 함께하는 정기투어를 이용하는 게 좋다. 단체(15명) 투어를 할 경우 전화(☎053-661-2624)로 요청하면 해설사를 지원받을 수 있다.

▲ 의료선교 박물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대구 골목길 투어에서 ‘방천시장’과 함께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되는 곳이다. ‘비운의 가수’ 김광석은 1964년 대구 대봉동에서 태어나 서른셋의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방천시장 골목에서 5살까지 뛰어 놀았다고 한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은 방천시장 동편, 신천대로 둑길 350여 미터 공간에 조성됐다. 그 길을 걸으면 김광석을 추억하는 벽화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김광석길은 매년 새로운 벽화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활짝 웃는 김광석 초상화가 늘어나는 편이다.

▲ 김광석 길

김광석 동상이 정겨운 골목으로 들어서면 그의 주옥같은 노래가 정겹게 귀청을 울린다. 김광석 노래는 가게마다 제각각 틀어 대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한 곡씩 음을 탄다. 때문에 골목을 걸으면서 노래 한 곡을 온전히 들을 수 있다.

▲ 동성로

방천시장에는 김광석길 뿐만 아니라 추억의 국자 만들기, 다양한 소품샵, 마카롱 카페, 한옥카페 등 이색적인 즐길 거리들도 많다. 젊음의 쇼핑문화 공간 ‘동성로’ 대구 동성로는 젊음이 넘치는 쇼핑공간이다. 서울 신촌이나 홍대 거리와 유사한 곳이다. 동성로에는 대형 백화점과 각종 브랜드제품을 취급하는 상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대형식당 등이 밀집해 있어 언제나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 방천시장

‘전국 최대 참꽃 군락지’ 비슬산

비슬산(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위치)은 팔공산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계절 마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봄철에는 연분홍 참꽃(진달래)가 물결치고, 여름철엔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맑고 시원한 물이 더위를 식혀준다. 신록이 색동옷으로 갈아입는 가을이면 억새 군락이 장관을 연출하고,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겨울에는 ‘비슬산자연휴양림 얼음동산축제’가 열려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 비슬산 기바위, 비슬산 대견사, 도동서원

비슬산은 국내 최대(30만 평) 참꽃 군락지로, 봄볕 완연한 4월 중하순에 이르면 정상은 연분홍 참꽃이 장관을 이룬다. 달성군은 이때에 맞춰 ‘비슬산 참꽃문화제’를 개최한다. 축제에 참가하면 숲속 음악회와 참꽃 시 낭송회,참꽃가요제, 참꽃 댄싱 카니발, 참꽃골든벨, 참꽃 8090콘서트, 사진전시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함께할 수 있다.

비슬산에는 관광객을 유혹하는 볼거리도 많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되었다가 100년 만인 지난 2014년 민족정기회복차원에서 중창된 대견사는 전성기에 비슬산의 중심 사찰이었다고 하는데, 달성군에서 복원한 3층 석탑(유형 문화재 제42호)
을 볼 수 있다.

비슬산의 암괴류(천연기념물 제435호)도 관광객들의 관심을 끄는 볼거리 중 하나다. 암괴류는 길이가 2㎞, 폭 80m, 두께 5m로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화강암의 거석들로 이뤄져 있다.

▲ 대구 달성군 화원읍 마비정 벽화마을: 산간오지 30여 가구 담벼락에 1950∼70년대 농촌 생활상이 벽화를 그렸더니 해마다 100만 명 가까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대구 시민들의 정신적 영산 팔공산

팔공산은 대구의 상징이자 대구 시민의 안식처다. 신라시대 때 김유신 장군이 팔공산에 올라 통일을 구상하고, 고려를 개국한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이기도한 곳이다.

팔공산의 원래 이름은 ‘공산’이었다는데, 신숭겸을 포함한 고려의  개국공신 8명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八公山)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팔공산에는 볼거리가 많은데, 명물은 ‘갓바위’다.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좌불상을 일컫는 데, 해발 850m 지점의 골짜기에 터를 잡고 앉아 발 아래 사바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

▲ 구암서원

대구시민들에게 갓바위는 영험한 존재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기원하는데, 특히 입시철이면 자녀나 손주의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팔공산 기슭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와 파계사(把溪寺), 부인사(符仁寺), 은해사(銀海寺) 등 다수의 명찰들이 자리를 잡았다.

7세기 말에 원효대사가 삼국 통일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중생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국보 109)도 볼 수 있다. 이 석굴은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보다 제작연대가 100년 이상 앞서고, 우리나라 석굴사원 중 유일하게 자연 암벽을 이용한 점이 특징이다. 경주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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