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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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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 김채현 기자
  • 승인 2016.02.22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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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포함 총 9건
▲ 구례 천은사 삼장보살도

[투어코리아]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등 9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보물 제1887호)는 1307년에 작가 노영(魯英)이 흑칠한 나무 바탕 위에 금니(金泥, 아교에 갠 금박가루)로 그린 금선묘(金線描) 불화로 앞면은 아미타여래와 팔대보살을, 뒷면은 고려 태조가 금강산 배재(拜岾, 절고개)에서 담무갈보살에게 예경(禮敬,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드림)했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고려 시대 사경화(寫經畵, 불교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한 그림)를 연상시키는 뛰어난 금선묘 기법과 높은 완성도, 작가와 조성연대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고려 불화와 산수화풍 연구에 있어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구례 천은사 삼장보살도(보물 제1888호)는 1776년에 천은사 대법당(극락전) 중단(中壇)에 봉안하기 위해 화련(華連) 등 14명의 화승(畵僧)이 제작한 것이다. 삼장보살도는 수륙재와 관련된 불화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부터 제작되기 시작해 많은 수가 전해지고 있으나, 이른 시기 작품은 대부분 해외에 남아 있다.

천은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후반기 불화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현존하는 삼장보살도 중 유일하게 화기(畵記) 란에 흰색 글씨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낱낱이 기록해 놓아 삼장보살의 도상(圖像)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구례 천은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보물 제1889호)은 보살상의 복장(腹藏, 불상을 만들 때 뱃속에 봉안하는 사리 등의 물건)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태능(太能)과 영원(靈源)의 발원으로 조각승 현진(玄眞)을 비롯한 5명의 조각승이 1614년 6월에 조성한 불상이다. 이 2구의 보살상은 중생을 닮은 듯 실재감 있는 얼굴, 힘 있는 선묘, 늘씬한 비례감을 갖춘 17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 구례 천은사 관세음보살좌상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보물(제1890호)은 2012년 6월 석탑의 해체 수리 시 지대석 윗면에 마련된 사각형 홈에서 발견된 것이다.

불감(佛龕)은 지붕의 네 면의 모를 죽인 녹정형(盝頂形)으로, 정상에는 2개의 고리가 달려 있고, 중앙 벽면에는 타출(打出) 기법(금속의 안팎을 두드려 문양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기법)으로 아미타여래가 설법하는 장면을 장엄하게 나타내었으며, 문비(門扉, 문짝)에는 역동적인 금강역사가 지키고 서 있다.

불상은 모두 7구인데, 아미타여래·관음보살·대세지보살로 구성된 삼존상과 2구의 여래와 관음·지장보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불상들은 여말선초 때에 원·명대 라마 불교 양식을 수용해 제작된 외래적 요소가 강한 불상들로, 외래 양식의 전래와 수용 과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다. 또한, 출토지가 분명한 곳에서 불감과 7구의 불상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보물(제1891호)은 42수(手) 천수관음상으로, 1894년에 작성된 ‘흥천사사십이수관세음보살불량시주’ 현판 기록을 통해 늦어도 19세기부터는 흥천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수관음신앙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성행하였으나 불상으로 제작된 예는 극히 드물다. 

천수관음보살상은 고려~조선 초에 제작된 매우 드문 예로서 천수관음 도상과 관음신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익재난고권6~7’(보물 제1892호) 및 ‘역옹패설’(보물 제1893호)은 고려 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년)이 지은 책이다.

‘익재난고’ 권6~7은 시문집으로 전 10권 가운데 2권 1책 본이며, ‘역옹패설’은 시문평론집으로 4권 1책 본이다. 이들 판본은 1432년에 강원도 원주에서 판각한 목판에서 인출(印出)한 목판본으로서, 조선이 개국한 지 40년이 지난 후임에도 고려의 국왕과 원(元)의 천자를 높이기 위한 개행(改行)과 간자(間字)의 방식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고, 고려본의 문집에서 자주 보이는 행초(行草)의 혼용, 그리고 같은 자가 반복될 때에 쓰이는 기호인 ‘⺀ ’표도 자주 쓰이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한문학연구와 서지학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 퇴계선생문집목판

퇴계선생문집(보물 제1894호) 및 퇴계선생문집목판(보물 제1895호)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년)의 학문적 성과를 집성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퇴계선생문집’은 46권 24책(본집 45권 23책, 별집 1권 1책)으로 경자년(1600년) 초간본이며, ‘퇴계선생문집목판’은 752매(본집 709매, 외집 15매, 별집 28매)로서 초간본을 인출한 목판이다.

한국 문집의 연구와 조선 중기의 목판 인쇄문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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