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투어] 트로트 왕! 신바람 이박사 귀환

유경훈 기자l승인2014.10.20l수정2014.10.2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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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코리아=유경훈 기자] ‘호루루루~~~~ 좋아 좋아 좋아~!’


1998년 외환금융 위기(IMF)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트롯가수 ‘신바람 이박사’(본명 이용석.61)가 독특한 추임새의 ‘테크노 뽕짝’으로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경제난으로 시름에 잠겼던 국민들은 들을수록 신나는 ‘테크노뽕짝’에 매료돼 잠시나마 근심을 잊고 즐거움 누릴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이박사는 ‘국민 트롯 가수’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인기몰이를 했다. 그러나 이박사는 2002년에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친 뒤 마치 눈앞에서 사라진 신기루처럼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랬던 이박사가 지난해 10여년의 공백기를 깨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야야야’,‘반갑다 친구야’, ‘꽃나무 인생’. ‘애당초’ 등이 수록된 음반을 내놓으며 귀환을 알린 이박사는 잊혀져가던 그의 존재감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신곡 ‘내청춘’, 인기몰이 장전 완료


지난 9월 18일 경기도 안양 녹음실에서 만난 이 박사는 신곡 ‘내청춘(이 박사 작사.작곡)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고향을 떠나 타향 길에서 나는 나는 나는 달려가 보았지/세월을 따라 흘러간 청춘 나그네 이력서드냐/ 바람 같은 나의 인생 사연도 많아 사랑을 찾아 청춘을 찾아/아~아~아 흘러간 세월 내 청춘 돌려만 다오”


‘내 청춘’은 “자신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담아낸 것으로,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청춘)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담았다”고 이 박사는 소개했다. 이박사는 “곡(曲)이 좋아 팬들의 반응이 기대된다”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올 초에만 하더라도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이박사의 귀환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행사에서 섭외가 밀려들어 10년 공백을 무색케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되는 바람에 그의 활동에 ‘끼~익’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가을을 맞이해 연기됐던 행사들이 다시 열리고 섭외가 막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의 활동이 분주해지고 있다. 각종 행사에서 이박사의 섭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다른 가수들이 갖추지 못한 묘한 매력과 즐거움을 그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박사는 대중적인 친화력이 돋보이고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내재된 '흥'을 스스럼없이 표출시키고, 이를 통해 팬들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특출하다.


그의 이러한 ‘끼’(talent) 는 ‘의도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자제’다.


이박사는 어려서부터 하드(아이스크림) 장사, 이발소와 중국집 종업원, 구두닦이, 디자이너, 관광가이드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며 틈틈이 음악활동에 나섰다.


17세 때 팝(pop)을 접한 뒤 락(rock) 매력에 빠져 그룹을 결성해 디퍼플, CCR, 산타나, 록큰롤을 섭렵하고, 경기민요 명창인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선생의 권유로 9년간 국악도 공부했다.


그리고 밤무대 활동을 위해 나훈아의 '고향역'을 작사 작곡한 임종수씨한테 뽕짝도 배웠다. 즉, 그의 인생은 퓨전 그 자체나 다름없다.


그 중 78년부터 11년 동안 활동한 관광가이드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독특한 음색으로 ‘뽕짝’을 부르고, 노래 중간 중간에 ‘좋아~ 좋아~ 좋아’ 하며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그의 추임새는 관광버스의 흥을 제대로 돋우며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을 사로잡았다.


온몸을 가만 놔두지 못하게 하는 별난 음악은 중년 관광객들 사이에서 중독성 반응을 일으켰다. 이러한 그의 명성이 레코드 업계에 알려지면서 이박사는 89년에 ‘뽕짝 메들리’(신바람 이박사 메들이) 음반을 내고,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진짜 가수가 됐다.


신바람 이박사 메들리는 이후 5집까지 나와 길거리 리어카 시장을 통해 수백만장이 팔릴정도로 대박을 터트렸다. 그럼에도 그는 무명 가수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그러나 무명생활은 그의 노래가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한 ‘숙성기간’이었다.


일본 소니가 먼저 알아본 재주꾼 이박사
이박사는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여러 악기 연주에 능통한데 하모니카, 기타, 드럼, 키보드의 뛰어난 연주 실력은 과거 무명시절 완성된 것이다.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도 직접 도맡아 할 정도로 재주가 뛰어나다.


이런 재주꾼에게 1995년 기적이 일어났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음반시장을 가진 일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굴지의 레이블인 일본 소니 뮤직이 그의 비범한 재주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1년 계약이었는데 발표하는 노래마다 대박을 터트리다보니 계약 기간이 2년, 3년으로 늘어나 총 6년간 일본에서 활동을 했어. 일본에서 내 음반이 가장 많이 팔리다보니 내 음반만 따로 판매하는 매장이 생기고, CF도 참 많이 들어왔어. 당시엔 인기가 많아 시내를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였어.”


일본에서 이박사의 신드롬은 도쿄 부도칸(武道館)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의 공연은 그가 일본에서 정상급 아티스트로 인정받았다는 물증이다.


"부도칸은 우리로 치면 세종문화회관인데, 일본에선 공연의 성지로 알려진 곳이야, 일본 가수들에게도 꿈의 무대지. 내가 1996년 그곳에서 2만 관중을 모아 놓고 콘서트를 열었어. 이런 활약으로 ‘일본 가요대상 신인상’도 받았지.”


그러나 이박사는 2001년 일본에서의 높은 인기를 뒤로 한 채 활동무대를 국내로 옮겼다. 인터넷 붐을 타고 국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아 일본 못지않은 활동무대가 국내에 마련됐기 때문이다. 향수병 또한 그의 한국행을 재촉한 원인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몽키 매직 영맨’, ‘스페이스환타지’를 잇따라 히트시키고, 대학공연과 전국 라이브 투어를 하며 인기몰이를 해나갔다. 당시 이박사는 대학축제의 섭외 1순위였다. 특히 동숭동 대학로에서 열린 공연에는 8만 관중이 운집해 그의 음악을 즐겼다.


10년 공백을 깨고 가요계로 돌아온 이박사가 신곡 ‘내청춘’을 앞세워 다시금 인기 재건에 나섰다. 그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다시금 일상생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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